영화가 처음 한국에 등장한 것은 서양에서 영화가 탄생한지 9년만인
1903년의 일이다.

그무렵 황성신문에는 동대문의 한미전기회사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광고가
실려 있다.

그때 이름으로 "활동사진관람소"가 한국 영화관의 시작이다.

이어서 광무대 장안사 단성사 연흥사 등이 상설영화관으로 등장하고 1913년
을지로에 황금연예관(국도극장)이 문을 열었다.

광복전까지 우리나라에는 대략 1백85개의 영화관이 있었다.

이 영화관들은 1960년대에 들어서도 이름만 바뀐 채 그대로 유지됐다.

서울의 경우 역사가 가장 오래된 단성사를 비롯 국도 중앙 대한 동양 계림
광무극장 우미관 등 25개의 영화관들이 있었다.

한국영화의 성쇠와 운명을 같이해 온 영화관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국도극장은 광복 이후 1970년대에 이르는 30여년동안
국산영화의 단독개봉관으로 이름을 떨쳐 한국영화의 중심지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다.

"춘향전" "미워도 다시 한번"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영자의
전성시대" 등 한국영화 사상 빛나는 명작들이 모두 이곳에서 개봉됐다.

그뿐 아니라 이 극장은 1935년 대리석 로비와 좌우로 오르는 계단 등
르네상스풍으로 재건축된 이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보존가치가 높은
유일한 영화관 건물로 주목받았다.

국도극장이 지난해 10월 헐려버렸다는 사실이 뉘늦게 알려졌다.

극장이 헐리고 있을 때 서울시에서는 이 극장 건물도 문화재로 지정해
재개발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65년이 되도록 사유재산이긴 해도 공공시설이었던 건물이 사라지는 것도
몰랐다면 서울시 관계공무원들은 그동안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영화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도극장은 한국영화 기념관으로라도 보존했어야 한다.

어떤 문화재든 애정을 갖고 돌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공무원에게만 맡겼다가는 미문화원 옛광통관 승동교회 등 보존가치가
있는 근대 건축물도 국도극장 꼴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문화재도 시민단체가 지켜야 할 모양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