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지난 40년동안 스스로 성취한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이 기간에 그들은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모두 달성하여
선진국 문턱에 와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업도 한국경제의 성장과 발맞추어 세계적인 대기업의 대열에
접근하고 있다.

한국내에서 한국대기업의 명성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외국에서는
한국기업의 성공비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점차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한국기업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기업전략상으로는 다음의 몇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할수 있다는 도전정신( can-do spirit )과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투자였다.

한국인들은 경부고속도로 제철 자동차 반도체등 선진국들이 보기에는
모두 안될 것이라고 말렸던 것을 억척스럽게 해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후발개도국이 선진국을 쫓아 가려면 선진국의 합리성만을 가지고는
안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는 얻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빠른 속도다.

다른 나라에서 3년 걸리는 일을 1년에 마치면 그만큼 비용이 줄어들고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된다.

물론 졸속주의의 피해는 많은 부실공사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품질과
정교함을 희생한 속도는 더이상 용납할수 없다.

그러나 중동등의 해외건설과 국내사업의 전개에서 이미 입증된 속도의
장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셋째는 원가우위의 경쟁전략이다.

경제발전의 초기에는 기술이나 브랜드를 가지고 선진기업과 경쟁할수
없다.

원가만이 후발기업의 가장 확실한 경쟁무기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단순노동의 임금에서 시작된 원가우위는 지난 30년동안
숙련노동과 기술인력의 임금,대량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일사불란한 조직력,정부의지원 등도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지적할수 있다.

위험감수투자,빠른 사업추진,원가우위의 추구등 한국기업의 성공비결은
다분히 기업가적 혁신의 산물이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은 이병철 정주영등 대기업가들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고도성장기의 경제에서 뛰어난 창업가의 능력으로 오늘의
대기업집단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기업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기업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미국 영국 독일등 세나라의 지난 100년간의 대기업 성장을 연구한
경영사학자 A 챈들러는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던 기업이
성장하면서 주식이 분산되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챈들러에 의하면 영국은 가족자본주의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투자가 부진하여 산업화에서 뒤떨어졌다고 한다.

소유경영체제와 전문경영체제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것이
반드시 좋다고 말할수는 없다.

분명한것은 세계적 수준의 대기업이 되려면 큰 자본이 필요하고,그러려면
자연스럽게 소유분산이 이루어지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전문경영체제는 기업이 성장하고 자본주의가 성숙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경영체제가 의미하는 "주인없는 기업"을 잘 굴러가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주인없는 조직이 제대로 경영되는 전통이
강하지 못하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주인이 없다고 하면 누가 조직을 책임지고
잘 이끌어나갈 것이며,또 그사람이 잘못할때 그사람을 어떻게 갈아칠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에도 몇몇 대기업은 이미 전문경영체제로 경영되고 있으나,이들
기업에 있어서 과연 잘 구축된 최고경영자양성,선임및 감독장치가
되어 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앞으로 10년쯤 후에는 한국에도 본격적인 전문경영시대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기업들은 거기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이미 선진국들이 많이 채택하고 있는 몇가지 장치를 서서히
시험도입할 시기가 되었다.

첫째는 외부 이사제도다.

전문경영자회장(CEO)을 임명하고 감독하는 장치로서의 이사회는
내부 이사만으로는 안된다.

미국처럼 이사회의 일부를 외부 이사로 하는 방안과 독일처럼 이사회를
2중으로 하는 장치등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는 소액주주 보호장치 내지는 소액주주의 의견이 회사경영에
반영될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금융기관이 소액주주들의 위임을 받아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대표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갖는 장치등이 보완되어야 한다.

셋째는 오는 97년부터로 예정된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인수제도의
합리적 도입이다.

자본시장은 전문경영자의 무능과 비위를 감독하는 가장 확실한 장치이다.

이외에도 기업내부에 미래의 CEO를 양성하고 걸러내는 인사제도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된 미국기업에 있어서는 전문경영자가
주주나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위험,즉 "대리인비용"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리인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시 소유경영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전문경영체제는 그것이 더 우수해서
채택되는것이 아니고,기업성장에 따라 자본이 분산되면서 불가피하게
나타나게 된다.

물론 기업수에 있어서 다수를 점하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는
전문경영체제의 논의는 아직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한국을 대표할만한 십수개의 대기업들은 앞으로 다가올
전문경영시대에 대비한 몇가지 장치를 실험적으로 도입할 시기가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