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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닮은 산업안전… 심판의 잦은 휘슬이 경기를 망친다
한경 CHO Insight
월드컵 축구 시즌이 돌아왔다. 2002년 6월의 월드컵 4강 신화는 개인기의 열세를 극복한 코치진과 선수들의 조화로운 조직력의 승리였다. 가로 68m, 세로 105m의 사각형 공간 안에서 실점 없이 승리하기 위해 포지션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축구 경기는 산업안전과 매우 닮아 있다. 축구가 코치진의 체계적 지휘 아래 공격-수비-미드필더진이 의기투합할 때 승리할 수 있듯, 산업안전 역시 정부의 처벌·감독 아래 기업의 자체예방역량, 현장의 안전의식 문화, 그리고 취약분야에 대한 지원이 유기적이고 조화롭게 작동될 때 '사고 없는 일터'라는 월드컵 4강 같은 기적을 완성할 수 있다.
축구 경기든 산업 현장이든 가장 약한 부분에서 실점과 중대재해가 발생한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면서도 OECD 38개국 중 산업안전 수준이 34위에 머무르는 우리나라가 중대재해와의 건곤일척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처벌·감독, 자체예방역량, 의식·문화라는 안전 삼발이(Safety Tripod)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중대재해는 결국 삼발이의 가장 낮은 쪽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산업안전에 있어 ‘처벌과 감독’은 축구에 룰(Rule)과 심판(Referee)에 해당한다. 심판이 레드카드를 꺼내는 목적은 선수를 쫓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반칙을 막고 경기가 안전하게 흘러가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기업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어야 한다. 심판이 일관성 없이 판정하면 경기가 거칠어지듯, 정부의 처벌과 감독도 명확한 기준과 예측 가능성을 가져야 현장의 수용성이 높아진다. 고의적이고 치명적인 위험 방치에는 엄중한 레드카드를 꺼내 강력한 시그널을 주어야 하지만, 휘슬을 너무 자주 불어 경기의 흐름을 끊어버리면 안 된다.
과도한 규제는 기업들이 본질적인 안전 활동 대신 캐비넷에 켜켜이 쌓이는 면피성 서류를 만드는 작업에 에너지를 쏟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자체예방역량이 부족하고 안전의식과 문화가 허약한데 회초리로 혹독하게 체벌만 한다면 회초리가 부러지고 종아리에 피멍은 들어도 자체예방역량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정부의 처벌·감독 휘슬은 사용 빈도와 카드의 종류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중처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다. 우리의 안전이 어느 쪽에서 물이 새는지, 삼발이의 어느 발이 균형을 허물고 있는지, 공격진-수비진-미드필더가 따로 놀지는 않는지, 심판의 휘슬이 경기흐름을 끊어버리지는 않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때다. 안전성의 동쪽 성벽이 허물어졌는데 튼튼한 서쪽 성벽을 더 보강하는 것이 옳은 대책일 수는 없다.
기업은 안전 스트라이커인 위험성평가와 작업전 안전점검회의를 핵심으로 자체예방역량을 부단히 키우고, 정부와 대기업은 든든한 미드필더가 되어 중소기업이나 건설·제조업 등 취약한 분야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볼을 공급하고, 현장의 노사는 철벽 같은 안전의식과 문화로 수비진을 든든히 할 때 비로소 중대재해라는 실점을 막아낼 수 있다. 축구에서 대형 선수를 영입하듯이 안전수준이 급상승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11명의 선수들이 하나가 될 때 승리하듯이 노·사·민·정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원팀'이 될 때, 우리의 일터와 일상은 안전한 홈경기장이 될 것이다. 이제 서로를 탓하는 거친 플레이를 멈추고 서로를 신뢰하는 유기적인 전술로 산업안전의 신기원을 찾는 한 해가 되기를 응원해 본다. 오~ 필승 코리아!
류경희 전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노무법인 와이케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