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안은미, 파리 광장에서 사람들과 손잡고 둥글게 춤추다

23일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파리서 열린 ‘유럽 뮤지엄의 밤’ 특별 공연
10년 우정의 프랑스 시민 춤꾼들과 파리 한복판서 장관
서울 리움 미술관을 무대로 바꿨던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이번엔 프랑스 파리 광장과 미술관을 퍼포먼스 공간으로 바꿨다. 파리 한복판에 쏘아올린 핑크빛 연무, 미술관 전체를 가득 메운 원무(圓舞), 마티스의 그림 앞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관객들까지. 안은미는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을 박제된 전시장이 아닌 살아 꿈틀거리는 '상호조우체(Encounterface)'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안은미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립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Paris)에서 퍼포먼스 '백만(白蠻)의 밤'을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유럽 뮤지엄의 밤 2026' 한국 특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공연은 오후 7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미술관 로비와 광장, 마티스 전시실, 알베르 아몽 홀을 가로지르며 펼쳐졌다. 안은미의 비전문가 참여 프로젝트 '1분 59초'의 역대 참가자 24명이 전시장 곳곳에서 홀로 돌기 시작하자, 관람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잡고 거대한 원 안으로 합류했다. 2016년부터 10년간 프랑스 시민들과 쌓아온 관계와 기억이 하나의 공동체적 춤으로 부활한 순간이다.

무대가 외부 광장으로 확장되자 압도적인 장관이 연출됐다. 핑크색 연막이 파리 상공으로 피어오르며 센 강을 넘어 에펠탑의 실루엣을 분홍빛 안개로 물들였다. 안은미는 이번 작업에서 색채를 단순한 시각 요소가 아닌 작동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는 "노랑은 조건, 파랑은 변형, 핑크는 발생"이라며, "나는 완성된 작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이번 작업의 본질을 설명했다.

퍼포먼스의 정점은 앙리 마티스의 걸작 <춤> 앞에서 이루어졌다. 마티스의 그림 속 인물들이 서로 손을 잡지 못한 채 허공을 부유했다면 안은미는 관객들의 손을 직접 잡아 실제 공간에서 원을 완성했다. 그림에서 이탈했던 땅의 자리를 회복하고, 캔버스 안의 멈춰진 움직임을 살아있는 인간의 호흡으로 연결해낸 것.

마지막 무대인 알베르 아몽 홀에서 안은미는 바닥 위에 가득 펼쳐진 밀가루 위를 걷고 구르며 몸의 흔적을 새겼다. 그 위에 청색 물감이 부어지며 덩어리가 응결되자, 안은미는 이 반죽을 떼어 관객 한 명 한 명의 손에 쥐여주었다.



공연 내내 바닥에 축적된 몸의 움직임, 밀가루와 색채가 결합해 만들어진 사건의 잔여물을 관객의 삶으로 전이시키는 행위였다. 그날 밤의 사건이 관객의 손과 숨결 속에서 계속해서 춤추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다. 안은미가 일으킨 백만의 밤은 그렇게 관객들의 손바닥 위에 묵직하게 남았다.
이번 퍼포먼스에 참여한 프랑스 현지 참가자 프랑수아즈 우엘슈는 안은미에게 건넨 편지에서 "1분 59초는 나를 움직임과 춤으로 이끈 근원적인 경험이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서투름과 실수들을 안고, 춤을 하나의 가능성의 장소로 대하게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