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인 줄 알았는데 3만원…2030 꽂힌 젤리 버킨백 [트렌드+]

Y2K 감성에 장마철 실용성까지…'젤리 버킨백' 열풍
듀프 소비·백꾸 문화도 맞물려 MZ세대 취향저격
키키 키야 착용 후 입소문…검색량 최대 111배 폭증
/사진=아이돌 그룹 키키(KiiiKiii) 공식 SNS
'젤리 버킨백'이 최근 패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젤리 버킨백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버킨백 실루엣을 투명 폴리염화비닐(PVC) 소재로 구현한 가방이다. 온라인에서는 '젤리 펄킨', '펄킨백(Firkin bag)'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가격은 3만~8만원대 수준으로, 장난감처럼 말랑한 소재에 반투명 질감, 비비드한 컬러까지 더해졌다. 얼핏 보면 유치하고 가벼운 아이템 같지만, 이 가방은 지금 2030세대의 취향 집합체다. Y2K 감성부터 듀프(Dupe) 소비, 백꾸(가방 꾸미기) 문화, 장마철 실용성까지, 올여름 소비 코드가 이 가방 하나로 수렴했다.

◇젤리슈즈에서 시작해 가방까지…'젤리템' 시대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젤리 소재 유행은 갑자기 등장한 흐름이 아니다. 몇 시즌 전부터 패션업계에서는 젤리슈즈를 중심으로 관련 트렌드가 이어져 왔다. 반투명 PVC 특유의 키치한 분위기와 플라스틱 장난감을 연상시키는 질감이 2000년대 감성과 맞물리며 젊은 층 사이에서 꾸준히 소비됐다.



실제 럭셔리 브랜드들도 젤리 소재를 적극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로에베는 투명 PVC 소재의 뮬 신발을 선보였고, 끌로에는 젤리 소재 특유의 말랑한 질감을 살린 키튼힐 디자인을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한때 유아용 샌들이나 장난감 같은 아이템으로 여겨졌던 젤리 소재가 하이패션 영역까지 올라온 셈이다.



여기에 계절감이 맞아떨어졌다. 예년보다 빨라진 더위와 길어진 장마철로 물과 오염에 강한 PVC 소재 수요가 자연스럽게 커졌다. 여름철 부담 없이 들 수 있다는 실용성이 실제 구매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백꾸'(백 꾸미기) 문화와도 맞물렸다. 반투명 소재 특성상 가방 안 소지품이 그대로 드러나다 보니 키링과 파우치, 카드지갑까지 스타일링 일부가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젤리백 안 소지품을 공유하는 콘텐츠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 듀프 소비와 만나고, 연예인이 불붙였다

무엇보다 젤리 버킨백은 최근 확산하고 있는 '듀프 소비' 흐름과도 연결된다. 듀프는 고가 브랜드의 디자인 요소와 분위기만 차용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즐기는 소비 방식이다. 브랜드 로고까지 그대로 베끼는 이른바 '짝퉁'과는 결이 다르다.

과거 짝퉁 소비가 정품인 척 숨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 듀프 소비는 오히려 "듀프"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정품 여부보다 비슷한 분위기와 감성을 얼마나 재치 있게 소비하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젤리 버킨백은 대표적인 초고가 명품인 에르메스 버킨백 실루엣에 장난감 같은 젤리 소재를 입히면서 명품 특유의 상징성을 보다 가볍고 유쾌하게 비틀고 있다.



유행의 불씨는 연예인이 당겼다. 방송인 최화정 씨는 지난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과거 즐겨 들던 젤리 버킨백을 다시 소개했고, 온라인에서는 해당 가방에 '최화정백'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올해 들어서는 아이돌 그룹 키키(KiiiKiii) 멤버 키야가 두 번째 미니앨범 콘셉트 포토에서 연두색 젤리 버킨백을 든 모습이 확산하며 유행에 불이 붙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키키가 든 가방"이라는 입소문이 퍼졌고, 이른바 '키키백'이라는 이름까지 등장했다.

젤리 투웨이 백. /사진=다이닛 제공


◇"키키백" 입소문에 패션 업계도 들썩

관련 업계는 즉각 반응했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최근 4주간(4월 22일~5월 19일) '젤리백'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1배(1098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젤리 가방' 검색량도 약 13배(1196%) 뛰었다. 지그재그에서도 4월 20일부터 5월 19일까지 젤리백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631%, 검색량이 287% 늘었다.



브랜드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18일 29CM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단독 발매된 브랜드 다이닛(DEINET)의 젤리 투웨이 백 3종은 방송 시작 한 시간 만에 2억원에 가까운 거래액을 기록했다. 아이스 블루 색상은 조기 품절됐고 누적 시청자 수는 1만3000명을 넘어섰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무조건 저렴한 제품만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재미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성비 있는 경험 소비'를 찾고 있다"며 "젤리 버킨백은 듀프 소비와 Y2K 감성, 실용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폭발력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