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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고아성 마지막 연극? "이렇게 열심히 했던 적이…" [인터뷰+]
연극 '바냐삼촌' 바냐 역 배우 이서진, 소냐 역 배우 고아성
올해로 연기 경력 27년째인 이서진은 13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연극 '바냐삼촌' 인터뷰에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연기했던 적이 있었나, 살면서 이렇게 치열하게 토론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며 연극을 통해 처음 느낀 감정과 경험을 전했다. 고아성 역시 "작품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관객과 만나는 게 처음"이라며 "관객을 의식하기보다 무대 위 호흡과 집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7일 개막한 연극 '바냐삼촌'은 거장 안톤 체호프의 동명 대표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평생 삶의 터전과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바냐와 소냐가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 겪는 갈등과 절망을 담아냈다. 특히 배우 이서진과 고아성의 첫 연극 도전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서진은 타이틀롤 바냐를, 고아성은 그의 조카 소냐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은 전 회차 원 캐스트로 출연하며 밀도 높은 앙상블을 선보이고 있다는 평이다.
이서진은 드라마, 영화, 예능을 넘나들며 강인하고 진중한 캐릭터부터 따뜻한 인간미가 돋보이는 모습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삶에 대한 회의와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책임감과 애정을 놓지 못하는 바냐로 분해 극을 이끈다. 예능에서 보여준 까칠하면서도 다정한 매력이 캐릭터에 투영됐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고아성은 바냐와 함께 삶의 터전을 지키며 다음 세대로 나아가는 소냐를 연기한다.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도 묵묵히 내일을 준비하는 소냐를 단단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보적인 연기 내공을 증명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이서진은 "연극을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바냐삼촌'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아직도 긴장한 상태다. 긴장이 좀 풀렸으면 좋겠는데, 관객분들의 호응 덕분에 큰 힘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아성 역시 "다음 작품까지 생각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작품을 공들여 만든 뒤 나중에 공개하는 방식과 달리,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것은 처음이라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극 '바냐삼촌'은 1899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고전이다. 원작은 19세기 시골 영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서진과 고아성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보편적인 정서를 전달한다. 2024년 연극 '타인의 삶'으로 호평받은 손상규 연출의 첫 대극장 연출작으로, 미니멀한 구조물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서진은 "대본을 처음 볼 때부터 캐릭터들이 주변 사람들처럼 느껴졌고, 현대인들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전이 현대극으로 재탄생하는 것 같다. 사는 모습은 결국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관객분들도 각자의 삶이 있겠지만,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나가는 것 아니겠나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이서진, 고아성과의 일문일답.
이서진(이하 이) 아직도 긴장한 상태다. 좀 풀렸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관객분들이 호응을 잘해주셔서 거기에서 힘을 얻는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아성(이하 고) 그동안 작품을 완성해 두고 나중에 선보이는 방식에 익숙했는데, 실시간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 감회가 새롭다.
▲ 첫 연극 무대라 관객 반응이나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가 궁금하다.
이) 웃음을 참는 표정까지 설정된 부분이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웃어주셔서 깜짝 놀랐다. 개그맨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호응해주시는 게 감사하고, 무대 위에서 힘을 내는 원동력이 된다.
고) 연습 기간에 '바냐삼촌'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동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실제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희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나.
이) 대본을 볼 때부터 캐릭터들이 내 주변 사람들 같았다. 요즘 사람들의 모습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고전이 현대극으로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다. 사는 건 다 똑같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보시는 분들도 각자의 고민이 있겠지만, 삶이란 결국 이렇게 살아나가는 것이라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고) 매체 연기만 하다가 외국 문화 배경의 인물을 표현하는 게 생경했지만, 막상 몰입해 보니 어느 시대나 국가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소냐에게 몰두하다가도 무대 위에서 다른 세대 배우들의 대사를 들으며 중년의 위기나 노년의 허탈감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다른 배역들에게도 마음이 깊이 쓰인다.
▲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고) 안톤 체호프 연극이 가장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사소한 감정들을 극대화해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그랬다. 흘려보낼 수 있는 감정들까지 연출님께서 세밀하게 잡아주셨다.
이) 연습 과정에서 토론을 정말 많이 했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각자 생각이 달랐지만 연출의 리드 아래 하나의 과정을 만들어냈고, 그게 잘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치열하게 연기한 게 언제였나 싶더라.
▲ 베테랑이지만 첫 연극이라 힘들었을 텐데, 무대 실수는 없었나.
이) 하루 쉬고 공연을 앞두면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되다가도, 막상 무대에 서면 입이 저절로 대사를 뱉고 있더라(웃음). 다행이라 생각했다.
고) 평일과 주말의 관객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연출님은 내가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주시는 편이다. 관객 반응이 좋더라도 '관객과 게임하지 말고 무대 안에서 배우들과 호흡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 이서진 배우는 '다시는 연극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변함없나.
이) 솔직히 끝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웃음). 정말 힘들다. 관객분들의 호응이 좋아 버티고 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벌써 도망갔을 것 같다. 연습 과정이 무척 고되다. 서로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 매력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고) 나 역시 현재로서는 다음 연극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 '꽃보다 할배'의 박근형, 신구 선생님이 같이 연극하자고 하셔도 거절할 건가.
이) 전혀 생각 없다. 같이 하자고 하시면 이민이라도 가야 할 것 같다(웃음). 선생님들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멤버들이 계신다. 나는 여행이나 같이 가는 게 맞다. 선생님들을 3개월 동안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에게는 열흘이 최대치다.
▲ 연극을 시작한 후 달라진 일상이 있다면.
이)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운동도 하며 컨디션 관리에 집중한다. 영양 주사까지 맞을 정도로 애쓰고 있다(웃음).
이) 처음부터 내 스타일대로 대사를 읽었는데 연출님이 그 느낌을 무척 좋아해주셨다. 그 안에서 디테일한 부분만 다듬어주셔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선배님이 하시는 게 맞다"고 신뢰를 주셔서 그 느낌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고) 다른 작품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경험인데 연습 때 다른 캐릭터의 대사를 읽어보기도 했다. 연극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연출님이 생각한 소냐는 내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무대를 휘저을 정도로 더 발랄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내가 평소에 얼마나 얌전했으면 그렇게 놀라셨을까 싶었다.
▲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이) 무대에 서 있는 모습 자체가 나답다는 반응이 많았다. 원작을 모르는 지인들도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나영석 PD는 줄거리를 듣더니 "막장 드라마 아니냐"고 하더니, 직접 보고 나서는 "무겁고 고루할 줄 알았는데 현대적이고 강렬하다"며 재밌어했다. 결국엔 "아무것도 안 하고 평소랑 똑같네"라고 한마디 하더라.
고) 동료 배우들을 초대할 때 긴장을 많이 했는데 칭찬을 많이 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 참고한 기존의 '바냐삼촌' 작품이 있나.
고) BBC에서 제작한 영상을 인상 깊게 봤고 그것을 보며 준비했다. 내가 본 버전은 소냐가 바냐의 슬픔 속에 함께 침잠하는 결말이었다. 이번 연극을 준비하며 'T(이성적인 성향)' 같은 선배님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매일매일 울어주시더라(웃음).
이) 나는 이런 작품이 있는지도 몰랐고 아직 원작 대본도 따로 보지 않았다.(웃음) 고아성이 보내준 BBC 영상만 참고했다.
고) 연극계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들었다. (심)은경 씨와는 어릴 때부터 친분이 있는데 서로 공연 기간이 겹쳐 만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이) 연극은 각색과 연출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고 본다. 보지 않아도 우리와는 또 다른 작품일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메소드 연기가 유행했지만 나랑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는 캐릭터를 나에게로 가져와서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평소랑 똑같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 익숙함 안에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고) 원작이 아주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작품은 아니다. 손상규 연출님의 각색에는 간절함이 가미됐다.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다정함'이 아닐까 싶다. 이 연극을 통해 그 다정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이) 극이 끝나면 소냐와 바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듯, 관객분들도 연극을 보신 뒤 각자의 일상으로 잘 복귀하셨으면 좋겠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