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지웠고, 서울은 보여줬다...리히터가 폭력을 다루는 방식

[arte] 김인애의 Art de Vivre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비르케나우'
폭력의 이미지를 재현하지 않고 지워버린 작품

반대로, 서울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는
가능한 한 드러내며 침묵을 깨려함
이미지를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극단적인 폭력을 다룬 이미지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얼마나,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파리 루이 비통 재단에서 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비르케나우와 학부 시절 서울에서 열었던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하려 했다. 나는 그 두 전시 사이, 그리고 두 도시 사이에서 조금 늦게, 그리고 망설이며 서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비르케나우: 재현을 멈춘 자리



리히터 재단 학술연구원 케르스틴 퀴스터(Kerstin Küster)는 비르케나우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했다. 1944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죄수가 몰래 촬영한 네 장의 사진을 책에서 본 리히터는, 처음에는 그 사진들을 실제 크기로 사실적으로 그리려 했다고 한다. 아카이브에서 사진을 빌려와 캔버스를 준비하고, 거의 완성 단계까지 갔지만, 어느 순간 그 방식으로는 피해자들의 존엄을 회복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에 부딪혔다고 했다. 그 사진들은 가스실로 끌려가는 나체의 사람들, 폭력의 한복판에 있는 몸들을 담고 있었다. 그 장면을 “잘 그린 그림”으로 재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시 전경. Gerhard Richter <Erhängte> (1988) / 사진 © Fondation Louis Vuitton _ Marc Domage
그는 결국 형상을 여러 차례 덮어,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추상 화면으로 남겼다. 표면에는 붉은색과 녹색, 회색의 층들이 남아 있지만, 원본 사진은 완전히 지워졌다. 퀴스터는 “우리는 이 연작을 홀로코스트를 그대로 재현한 그림이라기보다, 무엇을 보여줄 수 있고 무엇을 보여줄 수 없는지에 대한 망설임이 남긴 흔적으로 설명하곤 한다”고 말했다.

내게 이 설명은, 하나의 미술사가적 해석을 넘어 유럽식 기억 문화의 한 단면처럼 들렸다. 2차대전 이후 서구 미술계는 홀로코스트, 즉 ‘쇼아(Shoah)의 이미지’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해왔다. 피해자의 몸과 얼굴을 다시 시장과 전시장에 올려놓는 행위가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자각, 그러나 그렇다고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 역사를 지워버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비르케나우는 이 사이에서 재현을 멈추고, 망설임만 화면에 남겨둔 사례다.



서울 인사동의 작은 전시 - 끝까지 보여주려는 자리



학부 시절, 나는 지금과 아주 다른 전시를 준비했다. 학회 친구들과 함께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에 참여했다. 구정 연휴 동안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작은 전시 공간을 빌려, 교화소와 수용소 출신들의 증언과 그림을 모아 걸었다.

우리는 어떤 증언과 그림을 전시장에 꺼내 놓을지 결정해야 했다. 특히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장면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처참했다. 결국 가장 충격적인 사진과 세부 묘사는 전시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기본 의도는 “가능한 한 솔직하게 보여준다”에 가까웠다.



전시장에는 브라이언 존슨의 ‘Love came down’ 앨범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잔잔한 찬양 음악에 이끌려 우연히 들어온 사람들이, 벽에 걸린 그림과 글을 천천히 읽고 난 뒤 숙연한 표정으로 말없이 나갔다. 환한 인사동 거리와 전시장 안의 어둠 사이의 간극이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브라이언 존슨 - Love Came Down]

보여주지 않는 윤리 vs 끝까지 보여주는 윤리

파리의 비르케나우와 서울의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는, 서로 정반대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은 재현을 최소화하고, 다른 한쪽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재현한다. 하나는 “더 이상 보여줄 수 없어서” 이미지를 지우고, 다른 하나는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이미지를 끝까지 보여준다.



두 방식 모두 윤리의 언어다. 비르케나우는 피해자의 몸이 다시 모니터와 캔버스 위에서 소비되는 것을 막으려는 쪽에 서 있다. 이미지의 부재를 통해, 관객에게 상상과 사유의 부담을 돌린다. 반대로 인사동 전시는, 이미지의 충격을 감수하더라도 침묵과 부정의 벽을 깨려 했다. 보지 않는 폭력은 너무 쉽게 ‘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시 전경. Gerhard Richter <Festnahme 2> (1988), <Festnahme1> (1988) <Erschossener 2> (1988), <Erschossener 1> (1988) / 사진 © Fondation Louis Vuitton _ Marc Domage
어느 한쪽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없다고 느낀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사회와 맥락에서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일이다. 유럽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윤리가 70여 년의 논쟁 끝에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 문제는 여전히 아무도 말하지 않는 현실과 싸우고 있다.



이 두 방식은 상호 배타적이라기보다, 우리가 어느 시점에 어디에 서 있는지를 드러내는 좌표처럼 보인다. 파리에서 비르케나우 앞에 서 있을 때, 나는 서울 인사동의 작은 전시장과 평행하게 그려진 두 좌표 사이에 서 있었다.



거울 앞의 나, 그리고 관객의 자리



루이 비통 재단에서 비르케나우가 걸린 방에는 큰 거울과 유리 설치가 함께 놓여 있다. 리히터 재단 학술연구원은 “한쪽에는 과거, 가운데에는 나, 거울에는 미래가 보인다”고 말했다. 관객은 네 점의 추상과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시 전경. Gerhard Richter <Birkenau> (2014) / 사진.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시 전경 Gerhard Richter <Grauer Spiegel> (2018) / 사진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 작품의 의미를 모른 채, 단지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냐”고.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대에게 셀카는 자기를 기록하는 기본적인 언어입니다. 누군가가 셀카를 찍고 난 뒤에 제목을 읽고, 비르케나우가 무엇인지 검색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입구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답은 예상보다 관대했다. 나는 안도와 불편함을 동시에 느꼈다. 셀카 인증샷에 대한 피로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출발할 수 있는 학습의 가능성.



비르케나우 방의 거울은, 나에게 “관객의 윤리”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관객은 어디까지 이미지 소비자이고, 어디서부터 증언의 일부가 되는가. 셀카는 어디까지 자기 기록이고, 어디서부터 타인의 고통을 배경으로 삼는 행위가 되는가. 재단 관계자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출발점이 아니라 그 이후의 대화일지도 모른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 사명으로서의 망설임



그때 내 주변에는 인권 변호사를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고, 북한 인권 운동을 평생의 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동료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자료를 읽고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세계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이 길을 내 인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분명한 확신을 품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지금 나는 럭셔리 브랜드와 미술 재단을 취재하는 기자로 일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세운 미술 재단에서,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의 폭력을 다룬 연작을 마주하는 일은, 그래서 조금 어색하다. 그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는 편이 좋다고도 생각한다.



어릴 적 아버지는 늘 물었다. “너는 누구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느냐. 너의 사명은 무엇이냐.” 나는 한때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를 준비하던 학생이었고, 지금은 루이 비통 재단의 전시를 취재하는 기자다.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면서도, 여전히 그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



다만 지금의 나는, 리히터가 회화 앞에서 했던 망설임을 글쓰기의 자리에서 반복하는 것이 나의 역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미지는 끝까지 보여주어야 하고, 어떤 이미지는 끝까지 보여주지 않기로 결정해야 한다. 어떤 이야기를 쓰고, 어떤 이야기를 쓰지 않을지,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쓸지 결정하는 일.

비르케나우 방의 거울 앞에서, 나는 그 결정들에 대해 다시 묻는 사람으로 남기로 한다. 사명은 거창한 문장이 아니라, 질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파리=김인애 럭셔리&컬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