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 언덕 위, 허름한 판잣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땅 모양을 살려 집을 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평소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연경당 사랑채'를 그대로 옮겨 오기로 했다. 연경당은 순조 대왕 시절 궁궐 안에 지은 선비의 집, 민간인을 위한 집이었다. 궁 안의 집치곤 소담하고 담백하기 그지 없는 건축물이었다. 1960년대 후반, 아버지는 벌써 몇년째 북촌과 서촌 주변 도로를 내며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별궁의 고재들을 하나 둘씩 사모으던 터였다. 그 나무를 갈고 깎고 다듬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마지막 목수이자, 중요무형문화재였던 배희한 대목장(1907~1997)을 모셔왔다.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의 전경. 산정 서세옥의 가족들은 1970년대 서울 성북동에 사랑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한옥 '무송재'를 짓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의 전경. 산정 서세옥의 가족들은 1970년대 서울 성북동에 사랑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한옥 '무송재'를 짓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목수는 창덕궁 연경당에 드나들며 여러 번 실측을 해야 했다. 아무리 뛰어난 목수라도, 한옥 한 채를 '제대로' 짓는 일은 고된 날의 연속이었다. 여름엔 나무가 불어서, 겨울엔 나무가 쪼그라들어 공사를 멈춰야했다. 오직 봄과 가을에만 허락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