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결국 당대의 기술 강국인 백제에서 엔지니어 세 분을 초빙했다. 그들이 지은 작품이 사천왕사(사텐노지)다. 잠실야구장 네 배 규모. 당시 관점으로 롯데월드타워급 건물을 완공한 것인데 흐뭇함도 잠시, 유지 관리 걱정에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태자는 고민 끝에 기술자 중에 전주 류씨, 류중광(柳重光)을 꼬셔서 붙잡는 데 성공한다. 고마운 태자는 다이아몬드라는 뜻의 ‘금강’을 성으로 특별히 하사했고 금강중광(金剛重光)으로 개명한 그는 금강조라는 현지 스타트업을 창업한다. 그리고 무려 39대를 이어가며 그의 후손들이 회사를 경영해왔다. 진정한 금강급 내공이다.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오사카성의 건설과 호류지의 개축도 담당했다. 그런데 그렇게 긴 세월이 평안하고 안녕하시기만 했을까? 모국 백제의 멸망도, 그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일본에서 파병한 수만 대군이 금강에서 몰살당한 백강전투도, 고려-몽고 연합군의 일본 침공도, 조일전쟁(임진왜란)도, 개방에 성공한 일본이 모국인 한반도를 잔혹하게 식민 지배하는 세월도 지켜봐야 했다. 1441년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150년 전에야 등장한 ‘민족’이란 개념과 그로 인한 격렬한 갈등도 모두 지켜보고 겪어냈다. 정치와 이념의 출렁이는 파도에 좌고우면하면 결코 견디고 이겨낼 수 없는 세월이었다.
현란한 신기술의 등장과 퇴장, 그 숨 가쁜 템포 속에서 틈새 기회를 찾아 도전하고 또 실현하는 현대 스타트업은 ‘뭘 해도 진득하게 오래’ 하는 특성과 궁합이 안 맞는 것 같다.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다시 하는 걸 싫어하는, 매사가 불만인 그런 특성이 ‘딱’이다. 인구와 경제가 2.5배인 일본이 유니콘 기업은 우리의 절반밖에 못 만드는 걸 보면 영 틀린 추론은 아니다. 식민지의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19세에 일본으로 가출한 신격호, 재일동포 차별에 대한 불만으로 고교생 때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전 세계적 삶을 펼치고 있는 일직(안동) 손씨, 손정의의 스타일이 ‘딱’이다. 국내 환경에서 봤을 때도 일본에 기회가 있다. 5100만 명에 불과한데 계속 줄어들 인구는 독립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로는 너무 적다. 확장해야 한다. 이제 류중광의 시대를 다시 열어야 한다. 앞으론 일본에 가면 1000년을 버티고 있는 그 사찰들을 감상하며 그 배경에서 웃고 계실 류중광 할배의 흐뭇한 미소를 떠올려볼 일이다. 그리고 따라가며 한 수 배우던 ‘한 시절’을 이제 끝내고 과감하게 진출해 새로운 금강조를 꿈꿔 볼 일이다. 디지털 전환에 늦어 여전히 아날로그 세상에 사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멋지고 새로운 사천왕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