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이중과세(二重過歲)'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양력 1월 1일은 새해 첫날일 뿐 명절로 치지 않는다. 음력 1월 1일 정초를 명절로서 이르는 말이 '설'이다. 우리가 '새해 첫날'을 양력·음력으로 두 번 보내는 것은 맞지만 명절인 '설'을 두 번 지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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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년째로 접어드는 올해 설맞이는 확실히 예년과 다른 모습이다. 온라인 추모는 물론 세배 등 설인사도 비대면으로 하는 데 점점 익숙해져 가는 듯하다. 강릉에선 441년을 이어온 합동세배행사 ‘도배례’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올해도 취소됐다는 소식이다. 대면으로 하든 영상으로 하든 설은 설이다. 세배도 해야 하고 새해 인사도 드려야 한다.

양력 1월1일은 ‘새해 첫날’ … 명절 아니야

설과 관련해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이중과세(二重過歲)’ 논란이다. 설을 신정과 구정, 즉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에 걸쳐 지낸다는 것이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양력으로 1월 1일은 새해 첫날일 뿐 우리네 풍속에서 명절로 치지 않는다. 예전에 양력설로 바꿔보려 한 적이 있었으나 실패했다. ‘정월 초하루’라고도 하지 않는다. 정월(正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을 가리킨다. 그 첫째 날이 정월 초하루, 즉 정초다. 음력 1월 1일 정초를 명절로서 이르는 말이 ‘설’이다. 그러니 우리가 ‘새해 첫날’을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에 걸쳐 보내는 것은 맞지만 명절인 ‘설’을 두 번 지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설 또는 설날은 정월 초하루 하나뿐이다. 당연히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말도 합리적인 표현이 아니다. 신·구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력 새해 첫날을 가리켜 두루뭉술하게 정초니 양력설이니 신정이니 하는 것은 사실 이치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다만 일부 사람들이 일상에서 편하게 쓰는 말을 현실 용법으로 인정해 사전에서 받아들인 것일 뿐이다.

새해를 맞아 웃어른께 인사로 하는 절을 따로 ‘세배(歲拜)’라고 한다. 拜가 ‘절할 배’ 자다. 이 글자는 세배를 비롯해 예배(禮拜), 숭배(崇拜), 배금사상(拜金思想), 백배사죄(百拜謝罪: 거듭 절하며 잘못한 일에 대해 용서를 빎. 百拜를 百倍 즉 ‘백 곱절’이란 뜻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등 우리말에서 수많은 단어를 만들어 냈다. 이 모든 ‘배’의 새김을 아우르는 말이 순우리말 ‘절’이다.

음력 1월1일만 정월 초하루이자 명절인 ‘설’

‘절’은 남에게 공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혀 하는 인사를 말한다. 집 안에서 하는 절이 있고, 집 밖에서 하는 절이 있다. 실내에서는 가장 정중한 큰절에서부터 대상에 따라 평절, 반절을 한다. 대개 부모 등 어른에게 세배할 때 ‘큰절’을 한다. 남자는 두 손을 모아 바닥에 대고 이마가 손등에 닿을 때까지 허리를 깊숙이 숙인다. 여자는 두 손을 이마에 마주 대고 앉아서 허리를 굽힌다.

밖에서 하는 절을 ‘선절’이라고 한다. 외부 활동 중 하는 인사 대부분이 선절에 해당한다. 가령 친근한 윗사람을 만났을 때 간단히 고개를 숙이는 인사도 ‘절’이라고 한다. 통상 상체를 굽혀 인사하는데, 굽히는 정도에 따라 정중함이 더해진다.

2018년 평창올림픽 때 우리 대통령에게 고개를 꼿꼿이 쳐든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이 그해 5월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는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대통령에게는 악수로 인사했고(즉 ‘절’은 하지 않았다), 시진핑한테는 선절을 한 것이다. 그것도 상체를 90도로 굽혔으니 가장 정중한 선절이었다.전통 예법에서는 세배 자체가 인사이기 때문에 따로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덕담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라 예법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의례적인 어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연스럽고 편하게 하는 게 추세다. 다만, 간혹 예의를 한껏 차린다고 “올해도 하시는 일 건승(健勝)하세요” 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틀린 표현이다. 십중팔구 ‘이길 승(勝)’ 자에 이끌려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라는 뜻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하지만 ‘건승하다’는 ‘탈없이 튼튼하다’는 뜻이다. ‘건강하다’와 비슷하다. 그러니 “늘 건승하십시오” “궂은 날씨에 건승하시길 빕니다”처럼 써야 할 말이다. 이를 일이나 사업에 연결해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