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남강이 품은 진주성, 석양에 물든 진양호…'남도의 보석'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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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의 도시 진주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는 진주 강씨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대봉산의 봉암(鳳巖)을 깨뜨려 봉황을 날아가게 했고, 이름도 비봉(飛鳳)산으로 바꿔버렸다. 이후 진주에선 한동안 큰 인물이 배출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위기를 느낀 강씨 일족은 날아간 봉황을 다시 부르기 위해 남강변에 대나무와 오동나무를 심었다. 봉황이 대나무 열매를 먹고 오동나무에 둥지를 튼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금도 남강변 곳곳에서 대나무와 오동나무가 심어져 있다. 본격적인 단풍철을 앞두고 더욱 매력을 발산하는 ‘봉황의 도시’ 진주에 빠져보자.
진주의 자랑 진주성과 촉석루
진주는 영남 지역의 교통 요충지였다. 동쪽으로는 함안군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하동군, 북쪽으로는 산청·의령군, 남쪽으로는 사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영남 지역에서 호남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진주를 거쳐야 한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두 차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청정 인공호수 진양호
진양호공원은 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과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있다. 1970년 길이 975m, 높이 21m의 댐으로 건설된 낙동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 인공호수다. 면적 29.4㎢에 유역면적 2285㎢, 저수량은 3억1000만t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로 수려한 호반과 호수 주변 방풍림, 5개의 섬이 잘 어우러져 자연경관도 빼어나다.
소싸움의 발원지 ‘진주소싸움’
진주소싸움은 삼국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전승(戰勝)기념 잔치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조선의 민속놀이로 진주소싸움 민속놀이가 언급될 정도로 유래가 깊다. 남강 백사장에서 진주소싸움이 벌어지는 며칠 동안은 싸움소가 일으킨 뿌연 모래 먼지가 백사장을 뒤덮었다고 한다. 수만 군중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고 이들이 마신 술 바가지로 인해 양조장 술은 동났다고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진주 땅에 들어설 때 수만 군중이 백사장을 뒤덮고 시가지를 누비니 남강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며칠씩 머무르기도 했다.
소싸움 전통은 1971년부터 전국 규모의 대회로 계승 발전해 왔다. 2001년 7월부터 전국 처음으로 토요상설 소싸움경기를 열고 있다. 2006년에는 진양호 인근에 민속소싸움경기장도 전국 최초로 건설했다.
진주=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여행수첩 진주 가는 길
서울·대전·산청 방면에서는 대전통영·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진주 나들목(IC)이나 진주나들목(IC)에서 들어서면 된다. 대구 방면에서는 중부내륙고속도로 경남 칠원분기점(JC)을 빠져나와 진주방향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나들목(IC)에서 진입하면 된다. 부산·창원·진주 방면에서는 남해고속도로 진주나들목(IC)을 빠져나와 진입할 수 있다.
서울~진주 KTX는 하루 6편이 운행된다. 서울~진주행 고속버스는 매일 20~30분 간격으로 있다. 항공기편은 인근 사천공항을 이용해 진주방향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항공기 편은 그다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