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부자들만 배불린 양적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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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선 국제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
2012년 세계 경제의 키워드는 ‘돈 풀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계를 장악한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등 케인시안들은 “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으면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전문가들은 각국 서민들의 고통이 오히려 더 커졌다고 진단한다. 이자율이 ‘제로(0)’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수입을 꾸준히 저축해 온 서민들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이자수익을 받았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은 선진국 국채에 집중됐고, 국채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채에 일정 자금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연금펀드의 수익은 하락했고, 이에 따라 연금 수급자들이 받는 돈도 쪼그라들었다. 영국의 연금 수급자 이익단체인 ‘사가(Saga)’에 따르면 2009년 영국 정부가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한 뒤 50세 이상 연금 수급자의 수입은 지금까지 9% 이상 줄었다.

고용시장도 좋아지지 않았다. 미국의 실업률은 여전히 8% 안팎에 머물고 있다. 시장이 살아나지 않자 경영효율화에 목을 맨 기업들은 저숙련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다. 당연히 투자도 살아나지 않는다. 영국 경제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미국에서 셰일가스를 제외하곤 다른 인프라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누가 이익을 봤을까. 양적완화를 예측한 헤지펀드들이다. 주식 파생상품에 주로 투자한 영국의 헤지펀드 CQS는 작년에 32%의 수익률을 챙겼다. 원자재 전문 트레이더인 레드카이트도 15%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지금처럼 경제적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엉망일 때 풀린 돈이 갈 곳은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양적완화가 또 다른 거품을 만들고 있다는 우려도 곳곳에서 나온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Fed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들이 이전 6년 동안 만들어낸 ‘값싼 돈(easy money)’ 때문에 비롯됐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며 “돈을 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경제 구조의 개혁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새 정부가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또 다른 재앙의 씨앗을 뿌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남윤선 국제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