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논란…기로에 선 기업가 정신 (1) 기업은 성장할수록 우울하다
1984년 충남 서산간척지 공사 현장. 현대건설은 거센 물살 때문에 최종 물막이 공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철사로 엮은 돌덩어리를 아무리 쏟아부어도 허사였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고철로 쓰려고 정박해 놨던 스웨덴 고철선으로 조수를 막기로 결정한다. ‘정주영 공법’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현대건설은 이 공법으로 공사기간을 45개월에서 9개월로 줄여 280억원을 절감했다.
미국 뉴스위크와 뉴욕타임스가 소개하기도 했던 정 명예회장의 이 일화는 한국의 대표적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사례로 꼽힌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정신을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기회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려는 모험과 도전정신”이라고 정의한다.
기업가(entrepreneur)는 ‘시도하다’ ‘모험하다’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entreprendre’에서 유래했다. 세계적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1912년 저서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기업 이윤의 원천은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에 있다”고 강조하며 “정치의 실패, 반자본주의, 관료주의 등이 기업가정신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계했다.
전문가들은 기업가정신이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한발 앞서 포착해내는 선견지명과 주저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단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명예회장은 먹고 입을 게 부족했던 1950년대 제일제당(1953년)과 제일모직(1954년)을 설립했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세운 뒤 1983년 반도체산업 진출을 결정했다. 이 명예회장의 기업가정신은 삼성이 매출 200조원의 세계 9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미국 차관단이 등을 돌리고 독일 철광업체 관계자들이 한국을 떠나는 역경을 극복하고 1968년 포항제철을 세웠다.
포항제철은 조업 개시 6개월 만에 흑자를 냈다. ‘철강왕’ 카네기는 연산 1000만을 이루는 데 35년이 걸렸지만 박 명예회장은 25년 만에 연산 2100만을 일궈냈다.
기업가에 대한 창업 연구와 교육으로 유명한 제프리 티몬스 미국 밥슨대 교수는 “기업가정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가치있는 것을 이뤄내는 창조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기업가정신의 목적은 돈을 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사업 창출로 만드는 데 있다는 얘기다.
아이팟,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혁신은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판도뿐 아니라 세계인의 삶을 변화시켰다.
영국 버진그룹 창업자이자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은 “평생 얼마나 벌었느냐로 기억되는 사람은 없다”며 “중요한 것은 뭔가 특별한 것을 창조했는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변화를 일으켰는지”라고 강조한다.
그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우편 주문 판매회사인 버진레코드를 세계 최대 독립음반사로 키워냈고 버진항공을 세운 뒤 우주관광사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