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내년 증시 최대 '티핑 포인트'…세계기축통화 논쟁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Google 검색에서 한국경제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국제통화질서 재정립 최대 과제
한국, 중간자로의 역할 절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이틀 후면 미국의 새 정부가 탄생한다. 당면한 많은 현안 가운데 금융위기로 흔들렸던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질서를 회복하는 일이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최대 과제이자 난제로 꼽히고 있다.



4년 전 느닷없이 중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준비통화인 특별인출권(SDR)을 슈퍼 통화로 도입하자는 제안에 따라 이전까지 간헐적으로 논의돼 왔던 세계기축통화 논쟁이 거세진 적이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논쟁이 올해 9월 이후 선진국, 신흥국 가릴 것 없이 양적완화 정책에 속속 동참하면서 환율전쟁까지 가세돼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기축통화 논쟁과 환율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가 전제돼야 한다. 하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기축통화가 도입될 만큼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었는가와, 다른 하나는 그동안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해 왔던 달러화가 과연 새로운 기축통화에 그 역할을 넘겨줄 수 있는 것인가를 점검해 봐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질서는 달러 가치가 흔들리면서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에 묵시적으로 유지돼온 ‘제2 브레턴 우즈체제’가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브레턴 우즈체제란 1944년 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제2 브레턴 우즈체제란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선언 이후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를 골간으로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 묵시적인 합의 아래 유지해온 환율제도를 의미한다. 미국이 이 체제를 유지해온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공산주의의 세력 확산을 방지하고자 했던 숨은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제2 브레턴 우즈체제는 이런 미국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에서 제2 브레턴 우즈체제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유럽의 부흥과 공산주의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이 지원했던 마셜 플랜의 또 다른 형태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안정적으로 유지돼온 제2 브레턴 우즈체제가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 무렵이다. 아시아 통화에 대한 의도적인 달러 약세로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위험수준에 달했다. 당시 레이건 정부는 여러 방안을 동원했으나 결국은 선진국 간의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제2 브레턴 우즈체제에 또 한 차례 균열을 보이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95년 4월 달러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와 아시아 외환위기다. 역플라자 합의에 따라 달러 가치가 부양되는 과정에서 외환위기로 아시아 통화가치가 환투기로 폭락하면서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 간의 구도가 재연됐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19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누적된 쌍둥이 적자로 달러화가 더 이상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돼 주목된다. 만약 이 시각이 실현된다면 세계와 한국 경제를 순식간에 뒤바꿔 놓을 수 있는 최대 악재(tipping point)다.



더 우려되는 것은 흔들리는 국제통화질서와 자국통화 위상을 바로잡아야 할 선진국들이 양적완화 정책에 더 집착한다는 점이다. 종전처럼 효과가 적고 이미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국제유동성이 많은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경기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경로로 의미가 있다. 하나는 ‘부(富)의 효과’ 경로다. 하지만 계속된 위기로 국민의 ‘디레버리징(부채감소·저축증대)’이 끝나지 않은 국면에서 이 효과는 적게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자국통화 약세에 따른 수출부양 통로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금리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양적완화로 풀린 돈은 캐리자금 형태로 신흥국으로 유입된다. 이때 신흥국 통화 가치가 동반 절상돼 선진국들은 수출경쟁력이 개선된다. 전통적인 경기부양책이 바닥이 난 선진국들이 추가 경기부양을 위해 양적완화를 고집하는 이유다.

하지만 특정국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자국통화를 평가절하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경쟁국들에 전가된다.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이다. 특히 선진국 통화가 평가절하될수록 그 피해는 경제 발전 단계상 한 단계 아래 국가에 집중된다. 중국 브라질 등 브릭스와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선진 신흥국이 여기에 해당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선진국의 자국통화 약세 정책에 따라 약화되는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신흥국들은 맞대응할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인하에 주력해온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통화정책이 최근 들어서는 대규모로 돈을 푸는 쪽으로 변경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기축통화 논쟁과 함께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글로벌 환율전쟁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