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개념미술가 최재은 씨, 25일부터 국제갤러리 개인전“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을 보며 한동안 천문학에 빠졌습니다. 지구 어디에서든 하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잖아요. 고대인들은 별자리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지식도 얻었죠.”
25일부터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펼치는 재일 설치·개념미술가 최재은 씨(59·사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하늘을 보며 시간과 생명의 의미를 생각했고 자연스레 천문학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1976년 일본으로 건너가 30년 넘게 살고 있다. 국내 활동이 뜸했지만 합천 해인사의 성철스님 사리탑 ‘선의 공간’, 서울 삼성의료원 앞 설치작품 ‘시간의 방향’이 그의 작품이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작가로 참여해 주목받았다.
‘오래된 시(詩)’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황혼부터 새벽까지의 하늘을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과 사운드 작업, 일출을 연속 촬영한 사진, 오래된 종이 위에 짧은 시구들을 기록한 드로잉을 내놓았다. 시간의 무한한 흐름과 유한성 속에서 그것을 지각하는 인간의 시선, 삶의 순환에 대해 다룬 작품들이다.
그는 “그동안 흙과 나무와 같은 대지의 요소들을 통해 생명의 순환과 시간을 탐구했지만 시선을 돌려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새롭게 고찰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1층에 설치된 작품 ‘유한성(Finitude)’은 독일 스토르코프 지방의 밤하늘을 세 방향에서 8시간 동안 촬영한 영상물에 베니스의 돌밭을 걷는 발자국 소리를 더했다. 밤하늘이 영상으로 이어지지만 달과 별, 구름, 공기 등이 소리와 융합되면서 시간과 공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탈리아 남동부 아드리아해와 타란토만 사이에 있는 풀리아의 칠흑 같은 밤하늘부터 일출 장면까지 드라마틱하게 포착한 사진 50점도 걸었다. 그는 “태양이 솟아오르는 장면을 1분 간격으로 촬영했는데 마치 생명의 탄생과 같은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작업실에서 떠오른 단어와 짧은 시구를 옮긴 드로잉 25점도 눈길을 끈다. 헌 책의 종이를 재료로 활용한 작품들에는 ‘1001년을 살아온 노송나무’ ‘루-시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 ‘순환이 지속되는 집’ 등의 시구가 있어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좌표와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하늘에 질문하곤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밤하늘과 관련된 신화나 설화, 예술, 문학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는 하늘을 소재로 시간의 흔적과 인생의 덧없음을 묘사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내달 22일까지.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