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 신용등급이 日 앞지른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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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실한 재정상태가 결정적 요인
나라빚 관리도 정책수단 일깨워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정부가 드디어 못 견디고 다시 칼을 뽑았다. 추가경정예산안을 짜야 한다는 정치권의 압력에 버텨오던 정부가 지난 10일 세금을 깎아 주어서라도 위축되는 경제를 막아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잘 나간다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벌써 석 달째 동반 감소했고 8월 중 휘발유 소비량도 두 달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소비재 수입은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여섯 달째 줄었다. 자본재 수입은 넉 달째, 원자재 수입은 석 달째 동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수출은 올 들어 8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나 줄었다. 내수와 수출 모두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깎아 주고 민간투자를 끌어들여서라도 경기를 살려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이미 생각했던 것보다 가계나 기업들의 경제심리 위축 정도가 큰 데다 경기위축을 가져온 외부적 요인이 이른 시간 내 개선될 여지도 없어 보인다. 더욱이 정부 입장에서는 이달과 다음달에 집중된 유럽 재정위기와 관련한 일정이 국내 경제에 줄 파장을 최소화하는 예방조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과연 경기를 얼마나 살려낼 수 있을까? 정부는 이번 9·10 경기부양책으로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0.16%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기를 살리는 방안을 놓고 정부와 정책전문가들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시쳇말로 좀 생뚱맞은 문제 제기를 하고 싶다. 과연 현 상황에서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책을 쓰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것일까라고. 지난주 피치사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등급 상향 조정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국가차원에서 앞섰다고 뿌듯해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경제가 어려운데도 국제평가기관이 한국 경제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본 이유는 뭘까? 유럽은 물론 미국과 일본이 줄줄이 신용등급이 깎이는 상황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이 가능했던 것은 건실한 우리의 재정 상태 때문이다.



이 상황을 바꾸어 말하면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국가부채 수준이 높아서 앞으로 경기부양을 하고 싶어도 할 정책수단이 없어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국가 채무관리도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처럼 하나의 정책수단이 되고 있다는 신호이며 우리의 국가채무관리 정책수단이 적어도 국가부채비율이 높은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보다 양호하단 이야기다. 그리고 이렇게 재정이 건전할 수 있었던 이유로 과거 정부의 ‘세입 내 세출’ 원칙이 큰 역할을 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재정통계가 잡히는 1970년 이후 기초재정수지가 흑자를 보인 해는 3저 호황기인 1987년, 1988년과 2002년, 2003년과 2007년뿐이다.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 유지가 가능했던 것은 실질이자율을 상회하는 실질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세입 내 세출’ 원칙보다는 거시경제환경이 재정건전성 유지에 큰 몫을 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는 이런 거시경제환경 조성이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실질이자율 1%포인트의 상승으로 인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부담이 2011년에는 40년 전인 1971년에 비해 2.4배나 증가했으며 외환위기 이후 그 증가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재정정책은 일단 시작된 후에는 경기상황에 맞춰 이를 중단하거나 취소하기 어려운 비가역성(irreversibility)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국가채무가 과다해지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의 이자율 관리와 물가 안정화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재정 및 통화 정책방향의 방향성도 매우 중요하지만, 정책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정책들과의 양적 적합성도 고려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는 지난 7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의 상설협의체인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출범시켰다. 목적은 대외여건을 주시하면서 국내 실물경제, 금융·외환 분야의 건전성 등을 점검한다고 하는데 국가채무관리도 정책수단의 하나로 보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국민을 위해 국가 경제를 튼실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