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국력과 민도(民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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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옛말이 된 '코리안 타임'
사소한 행동도 국가위상 척도돼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종종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을 듣곤 했다. 결혼식장이나 어떤 행사에서 예정된 시간을 잘 지키지 않고 늦게 진행하는 것을 그렇게 불렀다. 이것은 한국인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했다.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그런 말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우리가 그동안 변한 것일까, 아니면 시간 개념 없는 것에 체념한 것일까…. 필자는 전자라고 본다. 우리가 많이 달라졌다.



몇 년 전 봄꽃이 한창 좋을 때, 지방 출장길에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에 들렀다가 필자가 은퇴 후에 꼭 해야 할 일을 마음에 담고 온 적이 있었다. ‘화장실 한줄서기 계몽운동.’ 예술을 즐긴다는 수준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음악회 화장실에서도 그랬고, 영화관 화장실에서도 그랬고…, 사람들 모이는 곳에서는 늘 인상을 찌푸리는 그런 일이 허다했다. 그런데 필자가 시작하기도 전에 언제부터인가 고속도로 휴게실을 포함해 대중이 모이는 많은 곳에서 이미 자연스럽게 줄서기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달라진 것이다.

작년 초 스위스에 출장 갔다가 휴가로 근처에 있는 스키장에 들른 적이 있다. 그 스키장은 3개국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으로 리프트를 타고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게 돼 있었다. 첫날은 가이드와 함께 스위스 쪽 슬로프를 즐기다 3000m 고지에 있는 놀랄 만큼 깨끗하고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래도 음식은 이탈리아식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음 날은 점심을 하러 불과 5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탈리아 측 식당엘 갔다. 국력이 민도를 나타내는 것일까, 아니면 민도가 곧 국력이 되는 것일까. 스위스 식당의 화장실 바닥이 하얀 타일에 물 한방울 떨어진 흔적이 없는 호텔 화장실과 다름없는 깨끗함 그 자체였다면, 이탈리아 식당의 화장실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약한 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 ‘푸세식’에 오래된 철판 변기로 돼 있어 미끄러질까 두려워 볼일도 못보고 돌아오게 했다. 느린 종업원에, 주문도 제대로 안 되고, 기다려도 음식이 나오지 않아 가이드가 미안해서 쩔쩔맸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지척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었다. 천당과 지옥을 비유하면 과장일까.



이탈리아는 1991년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었으나, 2010년에 와서는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16%를 넘어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 결과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경제적인 면만 보고 국민소득 세계 1위의 스위스를 따라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소한 행동도 국력과 민도를 판단하게 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즉 ‘민도가 곧 국력이다’라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을 여기서 또 보게 된다.



이행희 <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장 leehh@corni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