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진실한 사랑을 탐구한 로맨스영화는 그동안 여러차례 제작됐다. 사고로 숨진 '그녀'와의 마지막 하루가 똑같이 재현될 때 평소에 못다했던 애정을 새삼 표현하게 되는 상황을 그린 미국 영화 '이프온리',환생한 아내를 맞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똑같은 날이 반복될 때 무심코 지나쳤던 타인에게 서서히 관심을 쏟게되는 미국 영화 '사랑의 블랙홀' 등이 그런 작품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도 과학적 진실 여부를 무시한 플롯을 지닌 로맨스영화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컴퓨터로 삭제하는 과정에서 참사랑의 의미를 찾아내는 이야기다. 예술의 본령이 실감나는 정서를 미학적으로 획득하는 것이라면 이 작품은 대단히 성공적이다.
주인공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은 '사랑의 리셋증후군'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초상이다. 그들은 싸우고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깨끗이 말소하고 그 위에 새로운 사랑을 이식하고자 한다. 그러나 조엘은 삭제도중 지워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순간들이 있음을 뒤늦게 알고 그것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이 같은 스토리는 사랑이 처절한 고통과 슬픔마저 기꺼이 껴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두 연인이 살얼음판 위에 누워 밀애를 나누는 도입부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사랑의 불완전성을 암시한다.
그렇지만 사랑은 통제할 수 있는 의식의 영역을 지나 무의식의 대륙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기억을 삭제한 인물들이 과거의 연인을 만났을 때 어느 순간 새로운 감정의 격랑에 휩싸이는 것이다. 조엘의 기억을 훔쳐 클레멘타인의 마음을 차지하려는 제3의 남자의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심리를 다룬 만큼 장면구성도 몽환적이다. 바닷가에 놓인 침대,방안을 적시는 빗발,난장이로 변해 싱크대에서 목욕하는 장면들은 욕망과 좌절의 심리를 추상화풍으로 형상화했다.
조엘 역 짐 캐리는 이 영화를 통해 코미디배우라는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까칠한 피부와 슬픔에 젖은 눈동자로 사랑의 번민과 아픔을 생생하게 연기한다.
10일 개봉,15세 이상 관람.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