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탈(fractal) 구조는 자연에서 나타나는 반복구조, 자기복제 구조를 일컫는다.
거북 등을 보면 조그만 육각형 판들이 모여 등판의 큰 육각형을 이루고 있고 눈송이를 확대해 보면 그 속에 또다시 작은 눈송이 구조가 나타나는 따위를 말한다.
복잡하게 만곡져 있는 해안선도 그런 것이며 하늘에 피어오르는 구름의 모양도 끊임없는 프랙탈 구조로 번져간다는 관찰이 있다.
고사리 잎도 그런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다.
작은 잎 하나지만 그 속에는 똑같은 모양의 잎사귀들이 계속 연결돼 있다.
사람 몸도 마찬가지다.
무수한 세포 속에 들어있는 유전체들이 모여 큰 몸체를 이루지만 사람 몸은 그 자체로 거대한 유전체이다.
우주도 그런 것은 아닌지, 프랙탈과 카오스가 비슷한 본질은 아닌지에 대한 학자들의 토론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주가 그래프분석가들을 중심으로 증권시장의 시세 역시 프랙탈적인 구조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연구들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증권투자에는 큰돈이 걸려 있으니까 연구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뜬금없이 프랙탈 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돌아가는 모양새가 바로 이 프랙탈 구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나 경제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렇고 기업은 물론 최근에는 각 가정의 돌아가는 모양새들까지 ‘막가자는 식’의 프랙탈 구조들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
작은 구조가 큰 구조로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혹은 반대로 큰 구조가 끊임없이 하위 단계에서 스스로를 복제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북한이 핵공갈을 치는 것도 그렇고 대통령이 재신임을 거론하는 것도 협박구조라는 본질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논리구조는 놀랍게도 동일하다.
흔히 나라 안의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설명하기 어려운 큰 흐름을 국운이라고 한다.
나라가 기울면 나라를 구성하는 차하위 단계에서 기우는 현상이 나타나고 다음에는 차차하위 단계 역시 기우는 현상이 나타난다.
대통령이 기울면 내각과 장관들이 기울고 내각이 기울면 말단 행정조직들까지 기울게 된다.
그 단계를 지나면 나라의 기풍이 기울게 된다.
모 정치단체의 활동가는 최근 “우리는 홍위병이다 어쩔래”라는 식으로 말했다지만 드디어는 모든 말단의 조직들까지 막가는 방향으로 기울게 된다.
하나의 억지에 대항하는 논리는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억지에 오염된다.
더불어 싸우다 보면 비슷해진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상호간에 전염시키고 오염시켜서 결국에는 모두가 진흙탕에서 뒹굴며 싸우는 개와 다를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복제과정이 급속히 진행된다.
프랙탈의 완성판이다.
하나의 시대도 그렇게 밀려간다.
조선 말기라고 해서 왜 국가를 지켜낼 만한 인재가 없었으랴마는 이미 사회 전체가 안되는 방향으로 밀려가는 상황에서 개별 인재들의 푸른 꿈들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지금 나라 전체가 그와 같은 프랙탈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번 함정에 빠지면 모든 것이 그 속에서 왜곡되고 진실은 은폐된다.
경제는 더욱 그렇다.
한번 포퓰리즘에 말려들면 그것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은 포퓰리즘을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3류 개혁가들은 개혁의 실패를 끊임없이 가진 자들의 저항 때문이라고 해석하기 시작하고 음모론이 횡행하며 그리되면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포퓰리즘은 더한층 강고해진다.
남미가 빠졌던 함정이며 마오쩌둥(毛澤東)의 혁명이 문화혁명이라는 통속화, 저질화 과정으로 진행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급기야는 홍위병들이 준동하고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시대정신은 스스로를 저급하게 만들고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프랙탈 구조가 자연스레 소멸, 해체될 때까지는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