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작가는 '찬밥' 신세처럼 외면받고 있는 게 국내 화단의 풍토다.
컬렉터들도 한지로 만든 작품을 구입하기 꺼려한다.
한지 작업은 '종이뙈기'에 불과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중견작가 전광영씨(58)는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잘 팔리고 외국 미술관에서 잇따라 초대전을 갖는 등 '미술관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지만 여전히 국내 작가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오는 6일부터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개인전을 갖는 한지작가 함섭씨(61)도 국내 화단에서 '아웃사이더'로 취급받기는 마찬가지다.
30여년간 한지작업을 해온 그는 '한지의 달인' 경지에 올라와 있다.
닥종이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 94년부터 바젤 쾰른 등 해외 아트페어에서 팔린 작품만도 2백70여점에 달한다.
함씨는 "나에 대한 평가는 개의치 않는다"면서 "그렇지만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데 한지 만한 소재가 없다는 점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함씨는 이번 전시에 '한낮의 꿈' 시리즈를 출품한다.
그는 한지를 단순한 조형적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한지 자체에 영감을 부여하는 작가다.
한지의 속성을 완전히 파악해야 가능한 작업이다.
물에 불려 덩어리가 된 한지를 말린 다음 그 위에 전통 한지를 씌우고 솔로 두들겨 하나의 판(화면)을 완성한다.
경우에 따라 고서(古書)의 낱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1백호 크기 작품의 경우 솔로 1만번 이상 두들겨야 완성된다는 설명이다.
이번 출품작은 전에 비해 밝아지고 오방색을 많이 쓴 게 특징이다.
오방색의 다양한 색채 울림이 황토빛의 바탕화면과 어울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두터운 질감으로 다가온다.
그는 "살아 숨쉬는 소재가 한지"라고 말한다.
"작가가 어떤 감성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작품이 완전히 달라질 정도로 변화가 무한합니다.
이런 이유로 조각가들에게 한지를 재료로 쓸 것을 적극 권하고 있습니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함씨는 서양화에 한계를 느껴 한때 고교 미술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한지는 그가 작가로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독창적인 예술세계의 길을 열어준 소재가 전통 닥종이였다"고 술회한다.
15일까지.(02)544-8481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