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94년 미국과 맺은 제네바 합의에 따라 동결했던 핵시설을 즉시 재가동키로 함으로써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도 벼랑 끝으로 치닫게 됐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제네바 합의의 전면 폐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극단적인 핵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북한의 의도 무엇인가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시설들의 가동과 건설을 재개하는 이유로 미국의 중유공급 중단에 따른 전력 생산 차질을 꼽았다.
북한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이달분 대북 중유 제공을 중단함에 따라 겨울철 심각한 에너지난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같은 강경한 입장이 중유공급 중단으로 인한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 사회에 호소하는 한편 미국에 대한 협상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유석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은 미국이 중유 제공을 중단한데다 외화벌이의 주요 수단인 미사일 수출마저 제지하자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벼랑끝 전술'로 핵카드를 제시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은 향후 미국의 대응 태도를 봐가며 다음 단계 조치들을 강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지난 9일 미국이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화물선을 공해상에서 나포한 것이 북한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북.미, 남북 관계 전망은 =북한은 담화에서 제네바 합의에 따라 봉인된 폐연료봉을 꺼내 핵무기 개발을 하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방법은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 원자력 시설은 핵무기 연료가 되는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중수로 방식이다.
이 시설을 가동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점 때문에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미국은 이번 사태를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경제 제재나 외교적인 조치를 통해 북한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북한의 개방정책과 경제개선 조치들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개성공단 건설이나 금강산 육로 관광 등으로 탄력이 붙고 있는 남북관계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