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9·11테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아직도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잇고 성금이 답지해 유족들이 큰 위안을 얻고 있다고 한다.
테러사건 직후에는 헌혈자를 비롯 자원봉사자들이 너무 밀려와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이들을 사절할 정도였다.
성금액도 27억달러(3조2천5백억원)를 훌쩍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테러발생 1주년을 기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월을 '국민봉사의 달'로 선포한데다 갖가지 추모행사가 이어져 성금액은 더 크게 불어날 것 같다.
'나눔과 공동체 정신'으로 불리는 자원봉사는 영국의 빈센트 드 폴 신부가 1617년에 조직한 '자선부인회'의 사회봉사활동을 효시로 친다.
이후 1863년 스위스에서 시작된 적십자운동,19세기 후반 '민중속으로'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의 브나르도운동,20세기 초 청소년선도를 위한 미국의 BBS운동 등이 자원봉사의 대표격이라 할 만하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도 전통적으로 공동체정신이 강했다.
상부상조의 형태인 두레 향약 등은 오늘날 자원봉사의 의미가 진하게 배어 있으며,공굴(公屈)의 경우는 집안이 어렵거나 환자가 있는 집의 논매기 등을 도왔던 순수한 봉사활동이었다.
태풍 루사가 휩쓸고 간 뒤 전국 각지 이재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으로 살아갈 일에 시름은 쌓여만 가고,지금도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교실의 찬 마룻바닥에서 밤을 지새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자원봉사자들이다.
공부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봉사는 때가 있다며 득달같이 달려온 대학생,며칠 휴가를 내 난생 처음 삽자루를 잡아보는 회사원,배낭 하나 걸머지고 오지의 수해봉사만을 고집하는 젊은이.이 모두가 감동적인 모습이다.
어디 이뿐인가.
폭우속의 노인을 구하려다 숨진 군인,피해조사에 나섰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면사무소 직원,수해복구 중 지뢰폭발로 양팔을 잃은 청년장교 등이 보여준 진한 인간애 앞에선 숙연한 마음이 든다.
자원봉사야 말로 절망하는 땅에 희망을 불어넣고 낙담하는 사람에게 미래를 심어주는 최상의 미덕이 아닐까.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