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193) 제7부 영국부에 경사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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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옥과 진종을 데리고 영국부로 돌아온 희봉은 정허에게 약속한 대로 장씨 재판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사람을 시켜 장안절도사 운대감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게 하였다. 그리고 녕국부집사 내왕으로 하여금 그 편지를 운 대감에게 속히 전달하도록 하였다. 그러고 있는 중에 정허가 지능을 데리고 영국부로 와 장씨가 마련해준 돈 삼천냥을 희봉에게 은밀히 건네주었다. 지능은 어리어리한 영국부로 들어서자마자 진종이 어디 있나 찾아 보았으나 녕국부에 기거하는 진종이 눈에 띌리 없었다. 그리고 진종은 수월암에서의 무리한 방사로 색상하여 시름시름 앓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희봉이 운 대감에게 부탁한 대로 장씨가 재판에서 장안수비 집을 이겼다. 장안수비 집에서는 장씨가 돌려주는 납채를 울며 겨자먹기로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억울하고 분한 일이 다시 없었다. 장씨는 득의양양하여 장안부 부윤의 처남 이도령이 보내주는 납채를 받음으로써 딸 금가가 이도령과 정혼을 하도록 하였다. 금가를 연모하고 있던 장안수비 집 아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재판 결과에 그만 넋을 잃고 있다가 하루는 슬그머니 집을 나가더니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해버렸다. 그 소문이 퍼지자 금가 역시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더니 대들보에 목을 매고 말았다. 금가가 장안수비 집 아들보다 이도령에게 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장씨 부부는 금가가 조금 상심하다가 곧 회복되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가 그만 일을 당하고 만 셈이었다. 장씨 부부는 장안수비 집에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 때문에 딸 자식이 마음속 깊이 무슨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는지 잘 헤아려 알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금가와 정혼을 하려고 무진 애를 쓰던 이도령도 역시 죽고 싶은 심정이었으나,사내 대장부가 그만한 일에 목숨을 끊을 수 없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는 어느 절간으로 들어가 칩거하고 있다가 얼마 지나고 나서는 과거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희봉은 자기가 장씨를 도와준 일의 결과가 오히려 이렇게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는 것을 보고는 함부로 권세를 이용하여 억지로 사람을 돕는 일이 얼마나 위험스러운가를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장씨에게서 받은 삼천냥을 돌려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였으나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가자 그런 마음도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더군다나 장씨측에서 돈을 돌려달라고 할 리도 결코 없을 것이었다. 어쨌거나 재판에서는 이겼으니까.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조삼모사가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