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0년] 산업 변천사 : 고속성장 "기적의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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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들이 1백여년에 걸쳐 이룩한 국민총생산 규모를 한 두세대안에 달성해 낸 압축성장의 표본". 광복 50주년을 맞은 한국의 "산업 성적표"는 대충 이렇게 요약된다. 반도체 가전 자동차 조선등의 분야에서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한국 산업이라지만 5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산업은 없다"고 해야할 지경이었다. 1946년 국내 공산품의 공급규모가 양말은 8사람당 1켤레, 운동화는 25사람당 1켤레 정도였고 보면 긴 설명이 필요없을것 같다. 고작해야 전기동 변압기 전동기 전구 종이 고무신 자전거타이어 연필 시멘트 내화벽돌 면사 면직물 소금 연초등이 "간판 산업"이었다(통계청간 "통계로 본 광복전후의 경제.사회상"). 그나마 당시 산업생산 활동에 대해선 변변한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45년 한국(남한)의 공업생산은 시멘트 9천1백t과 선철 13만9천t 정도가 고작이었다. 공업생산 활동에 필수적인 전력 생산량은 고작 7억kwh에 그쳐 북녘으로부터의 송전에 기대야하는 형편이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날의 국내산업엔 이같은 "빈곤"의 흔적을 찾을수없다. 품질은 차치하고 단순히 생산량만을 비교해도 지난해 선철 생산량(2천1백16만9천t)은 해방되던 해에 비해 무려 1백52배나 늘어났다. 발전량(94년 16만4천9백93기가wh)은 2백35배, 시멘트(5천73만t)는 5천5백74배 이상 급증했다. 해방직후의 산업시설은 일제가 남기고 간 소위 "적산"이 대부분이었고,그나마도 대단히 낙후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한국 산업이 걸어온 지난 반세기는 "무"에서 "유"를 이끌어낸 각고의 나날이자 "기적 창출"의 한 세월이었다고 할수 있다. 지나간 50년 한국산업의 여정은 한마디로 상전벽해를 실감케한다. 한국의 산업은 해방후 60년까지 15년가량은 거의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면방등 섬유산업은 생산설비를 일제로부터 넘겨받은뒤 채 몇년도 가동하지못한채 6.25의 질곡속에서 태반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동란직전 2만2천대 가량이었던 방적기등 섬유기계는 절반이 넘는 1만2천대가 전쟁기간중 파괴되고 만것(산업은행 자료). 공업화를 향한 첫 걸음으로 기록되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62~66년)에 시멘트 비료 정유등 기간산업시설 건설이 중점 목표로 설정됐던 것만 봐도 당시까지의 국내 산업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광산물을 캐내고 방직추를 돌리며, 산림을 베어 목재로 만드는 공장들이 한국산업의 명맥을 잇는 대표적 존재들이었다. 진공관 라디오가 처음 국내에서 조립되면서 전자산업이 태동한건 59년의 일이다. 당시 한국의 주종산업은 섬유와 가발 신발 같은 노동집약적 경공업들이었다. 자동차공업은 62년 정부의 본격적인 육성계획에 따라 걸음마를 시작했지만그해 생산규모는 고작 2천6백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거의 모든 부품과 외장재를 미국 일본등에서 들여다 조립만 하는수준이었다. 포항 모래밭이 굴뚝밭으로 뒤덮이면서 철강산업이 웅비의 기반을 닦은건 60년대 후반의 일이다. 세계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조선산업이 본격 출범의 닻을 올린 것은 그보다도 훨씬 뒤인 70년대 들어서였다. 석유화학산업의 발진역시 70년대 이후 시작됐다. 이렇게 보면 광복이후 50년간 한국산업이 걸어온 "압축 성장"의 과정은 전반부 25년이 혼돈속의 모색기간이었고, 70년 이후에야 비로소 비약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고 할수 있다. 그 성과는 눈부시다. 전자산업은 지난해 3백억달러어치 이상을 수출하면서 일본 미국 독일과 자웅을 겨루는 "세계 빅4"의 자리에 우뚝 서있다. 그중에서도 "현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D램은 세계시장의 27% 남짓을 공급하며 정상을 넘보고 있다. 품목도 60년대 흑백TV, 70년대 컬러TV와 하이파이 오디오, 80년대 VTR를거쳐 요즘엔 컴퓨터 CD(콤팩트 디스크)플레이어등 멀티미디어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76년들어서야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인 포니(현대자동차)가 출현하면서 연산20만대의 양산체제를 갖췄던 자동차업계는 현재 1백만대 수출을 목전에 두면서 일본 미국 독일등 자동차 선발국들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군단은 이같은 양적 팽창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중국 동남아등 후발 개도국들에 기술을 건네주면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 미국 유럽같은 선진국들에서 우리 기술로 반도체 가전등 첨단공장을 돌릴 정도의 질적인 성장도 함께 이뤄냈다. 해결해야할 과제도 적지 않다. 아직도 대부분 산업에서 핵심 부품과 기자재를 국산화하지 못하고 있는 기술의 대외종속은 그중에서도 시급히 탈피해야할 현안이다. 기계를 중심으로 한 자본재산업이 크게 취약하다는 점도 개선이 시급한 문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균형 성장도 "치유"를 서둘러야 한다. 나라 안팎에서 거세게 밀려오고 있는 "WTO(세계무역기구)체제"의 개방파고와도 씨름해야 한다. 산업의 질적 고도화와 참된 자생력 경쟁력 확보를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전열을 다시 추스려야 할때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