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상무 & 李부장
어김없이 또 찾아온 연초 '인사 후 적응기'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u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uyung.com

새해 초 기업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연말 정기인사 이후 옮긴 사람, 합류한 사람, 남은 사람들이 한데 섞여 ‘적응 기간’을 거친다. 매년 벌어지는 일이지만 김상무 이부장은 늘 새롭다. 부쩍 많아진 ‘외부 출신’과 ‘여성’ 임원들 때문에 올해는 더 그렇다. 이들은 의례적인 ‘관행’과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고, 소통 방식에도 변화를 주는 경향이 강하다. 조직의 간부인 김상무 이부장은 이 같은 변화의 한복판에 섰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안도는 잠시뿐이다. 빠르게 조직을 안착시키고 어떻게 해서든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연초 김상무 이부장의 ‘인사 후 적응기’를 들어봤다.
고인물 빼내고 생산성 높아져
기업들은 ‘젊은 임원’ ‘외부 출신’을 전략적으로 발탁한다. 이들의 역할은 혁신에 있다. 조직에 활력과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들을 상사로 맞은 김상무 이부장은 과거 부정적 반응 일색이었다. ‘뭘 모른다’는 식이었다. 요즘 김상무 이부장은 다르게 행동한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주도하는 역할도 곧잘 한다.

국내 대형 유통사의 박 팀장은 올해 자신과 동갑인 40대 중반의 상무를 새 상사로 맞았다. ‘까칠할 것’이란 우려와 다르게 박 팀장과 새로운 임원은 죽이 잘 맞는다. 박 팀장으로부터 업무방식을 보고받은 신임 상무는 불필요한 회의부터 다 없앴다. 결재는 웬만한 것은 생략하고 메신저로 하라고 했다. 그 덕분에 상무 눈치볼 일이 확 줄었다. 박 팀장은 “중요 결재 때마다 상무 기분을 살피곤 했는데, 요즘은 이런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어서 좋다”고 했다.

외부에서 임원을 맞는 간부들도 요즘은 긍정적 평가를 많이 한다. 교육콘텐츠업체에 재직 중인 박 부장은 사장 주재 회의 때마다 사이다 한 캔을 들이켜는 것 같은 통쾌함을 느낀다. 회사가 사업 확장을 위해 영입한 컨설팅기업 출신 김 이사가 최고경영자(CEO)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서다. 박 부장은 “처음에는 김 이사의 직설적인 발언이 낯설었지만 그 덕분에 상급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히 의견을 내는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했다.

관가에선 민간 출신 국장들이 맹활약 중이다. 공직 외부에서 적격자를 찾는 ‘경력개방형 직위’를 통해 몇 년 전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단에 합류한 김 국장은 취임 직후 “민간 전문가인 내가 할 일은 제도를 정착시켜 우리 국을 없애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국’은 기업 규제 입법을 위해 한시적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이다. 기업이 잘하면 사라질 조직이니, 제대로 일하고 팀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인력 확보를 중시하는 공무원 조직 특성상 김 국장의 말은 조직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김 국장의 바람대로 취임 후 이 국은 민간 기업과의 소통이 활발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국장이 조직에 새로운 자극이 된 셈이다.
젊은 상급자들도 고민
어린 나이에 임원이 된 간부도 고민이 있다. 조직 내 나이에 따른 서열 문화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동기들보다 승진이 빨랐던 한 임원은 “후배를 상사로 모셔야 하는 상황도 껄끄럽지만, 선배이던 사람들을 부하 직원으로 만나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고 했다.

국내 한 은행에 다니는 김 팀장은 ‘승진 궤도’에서 벗어난 차장급 동료 직원들을 마주칠 때면 불편하다. 김 팀장은 40대 초반에 팀장에 올랐다. 하지만 자신보다 서너 살 많은 차장급 팀원들이 자신을 상사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업무 지시를 해도 명확히 대답하지 않는다. 외부 사람을 함께 만난 자리에서는 자신을 ‘선배’로 지칭하기도 한다. 김 팀장은 “회사에서도 원활한 영업을 위해 차장급 직원에게 팀장 명함을 내주고 적절히 예우하라는 지침을 내려 서열을 정리하기가 어색해진 상황”이라며 “입사 후배가 상사 노릇을 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푸념했다.

정보기술(IT)회사에 근무하는 정 팀장도 한 살 많은 팀원과 일을 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팀장인 자신을 건너뛰고 상부에 직접 결재를 올리거나 나이를 운운하면서 팀 분위기를 어색하게 해서다. 정 팀장은 “하루빨리 어색한 관계를 끝내야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리더로서의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안팎으로 치이는 ‘낀 세대’ 상무·부장
전형적인 인사 공식이 깨지면서 거취를 걱정해야 하는 ‘낀 세대’ 김상무 이부장이 늘었다. 공채 순혈주의, 연공 서열주의 아래에서는 선배들의 인사발령을 보고 승진 시기를 가늠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능력이 뛰어난 후배, 외부 전문직 인사 등 경쟁자가 늘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국내 한 금융회사에 재직 중인 이 부장은 “원래대로라면 내년에 상무 승진을 노려볼 수 있는 나이지만 전반적인 회사 분위기가 임원들의 평균 연령을 낮추는 쪽으로 잡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겨우 1960년대생 선배들이 떠났는데 그 자리를 1970년대 후반 후배들에게 빼앗기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전문직 영입을 우려하는 김상무 이부장도 상당하다. 바이오회사 경영지원팀에 근무하는 김 상무는 최근 기업설명(IR) 담당 총책임자로 부임한 다섯 살 어린 이 전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문제로 곤욕을 치른 회사 대표가 40대 회계사를 영입했는데, 바이오 분야에 문외한이어서 결재를 올릴 때마다 1시간 이상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 부장은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을 임원 자리에 앉히는 것은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