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을 겨냥해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핸드백 광고.

칠석을 겨냥해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핸드백 광고.

"이건 중국 문화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거다.", "중국인들이 이렇게 못생겼냐.", "촌스러운 시골 스타일이다."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가 한바탕 들썩였다. 키링그룹에 속한 프랑스 명품브랜드 발렌시아가가 중국의 명절 칠석(Qixi)을 겨냥해 최근 중국서만 선보인 한정판 핸드백과 광고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심차게 내놓은 이 명품백은 중국인들을 격노하게 했다. 전세계 명품시장의 '큰손' 중국에서 최근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중국인의 심기를 거스른 발렌시아가
음력 7월 7일(올해 8월 25일)인 칠석은 2006년 중국 정부의 제1차 세계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오르면서 '중국판 밸런타인데이'로 불리게 됐고, 연인이나 부부 등 남녀 사이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자리잡았다. '칠석 대목'을 노렸던 발렌시아가는 빨간색, 검은색, 분홍색 및 흰색으로 구성된 한정판 핸드백 4종에 중국어 그래피티로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그려넣었다. 빨간 장미와 하트로 둘러싸인 폭포 앞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핸드백을 선물하자 여성이 감동하는 표정을 짓는 광고도 선보였다.

하지만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웨이보에서 '발렌시아가의 천박한 중국 캠페인' 관련 게시물은 토론 21만건, 조회수 1억8000만회를 넘겼으며 '발렌시아가가 중국을 모욕했다'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1500만개를 기록하는 등 중국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주근깨 있는 못생긴 모델을 기용한 저의가 뭐냐",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광고", "핸드백이 촌스러운 시골 스타일. 심지어 예쁘지도 않다", "중국 사람들 취향이 이렇게 후진 줄 아나봐" 등 중국 소비자들은 불만을 드러내며 거세게 항의했다.

당황한 발렌시아가 측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며 무마하려 했지만 한정판 제품 및 광고에 대한 중국 내 부정적인 여론은 쉽사리 사그라들고 있지 않다. 명품 전문매체 징데일리는 "미·중 갈등 격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최근 중국인들의 애국심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명품 브랜드가 네티즌들의 표적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디올·돌체앤가바나 등도 전전긍긍
다른 나라에선 콧대높게 구는 명품업체들이 유독 중국 소비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해 프랑스 명품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직원이 중국 영토에서 대만이 빠진 지도를 중국 대학 강연자료로 썼다가 중국인들의 공분을 사는 일이 있었다. 대학 강의에서 한 학생이 "디올이 실수했다"고 지적하자 이 직원은 "중국과 홍콩·대만 등을 하나로 묶은 중국 경제권을 의미하는 대중화 강연에서만 대만과 홍콩을 표기한 지도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대만과 홍콩은 중국이 지배하는 영토가 아니란 뜻이었다.

홍콩 문제에 유독 민감한 중국인들은 이때다 하고 벌떼같이 들고 나섰다. 해당 설전을 촬영한 동영상이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하면서 중국인들은 해당 직원의 해고를 요구하며 디올 불매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했고, 다음날 디올의 상하이 법인은 소셜미디어에 사과 성명을 올리면서 "디올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고 있으며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디올이 발빠르게 수습에 나선 건 일전에 발생했던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돌체앤가바나 사태의 교훈이 컸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돌체앤가바나의 공동 창업자가 "중국은 똥 같은 나라"라고 말하면서 거센 후폭풍이 일었다. 장쯔이, 리빙빙 등 중국 스타들이 돌체앤가바나 패션쇼 불참을 선언했고 중국 전역에서 '돌체앤가바나 불매운동'이 시작돼 삽시간에 번졌다. 결국 이 회사의 중국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패션지 보그는 "명품 브랜드가 중국시장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전세계 명품 소비의 절반이 중국"
광저우 에르메스 매장 앞에 줄을 선 중국인들. AP연합뉴스

광저우 에르메스 매장 앞에 줄을 선 중국인들. AP연합뉴스

중국인의 소비력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명품시장에서 중국의 위상도 높아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다가 지난 5월 초 재개장한 광저우 에르메스 매장의 첫날 매출은 1900만위안(약 32억6700만원)으로 중국 단일 상점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한 여성은 이날 한 번에 500만위안(8억600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S&P글로벌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중국 명품 소비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중국의 명품 소비량은 전세계의 35%였지만 2025년엔 49%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명품 판매량의 절반이 중국서 나오게 된다. 보고서는 "정부의 부가가치세 인하와 위안화 약세, 홍콩 시위와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중국 소비자들은 과거처럼 해외에서 명품을 쇼핑하는 대신 자국에서 명품을 구입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전세계 최대 명품 시장'이다. 베인앤컴퍼니와 이탈리아명품협회인 알타감마재단이 발표한 '글로벌 명품업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명품시장에서 중국 소비자들의 기여도는 90%에 달했다. 말 그대로 중국이 없으면 명품시장의 존폐가 흔들릴 만큼 '중국인들이 끌고 간다'는 얘기다. Z세대로 불리는 1990년~2010년 출생자들의 중국 내 명품 소비시장 기여도는 2025년 45%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명품 소비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명품업계의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맥킨지는 최근 올해 글로벌 명품산업의 매출이 최대 39%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고, 베인앤컴퍼니는 명품시장이 35% 축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명품업체들의 중국 의존 및 눈치보기는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징데일리는 내다봤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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