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일본이 번다.’

2006년 LG경제연구원은 ‘가마우지 경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의 수출이 늘어날수록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커진다는 내용이었다. 2005년 대일 무역적자는 240억달러. 이 중 66%가 소재·부품 부문에서 나왔다.

15년 뒤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 친환경 바람을 타고 소재 강국으로 변신 중이다. 사양 산업이라던 화학산업 내에서도 협력사 정도로 인식되던 기업들이 변신을 주도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수소산업 밸류체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린 소재’가 이들의 주종목이다.

그 평가는 주식시장에서 먼저 이뤄졌다. 8일 현재 효성첨단소재 엘앤에프 에코프로비엠 코스모신소재 코오롱인더스트리 대주전자재료 일진머티리얼즈 등 주요 그린 소재 기업 20곳의 시가총액은 80조원을 넘는다. 작년 말의 두 배로 뛰었다. 이들의 약진은 시장 구도도 바꿔놨다. 작년 주식시장의 스타였던 2차전지 제조업체들을 조연으로 밀어내고 주연 자리를 꿰찼다. 배터리 제조는 경쟁 시장이 됐지만 배터리 소재는 쉽게 따라올 수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케미칼 시총은 10조원을 넘어섰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기에 접어들자 이들 기업의 이익은 급증하고 있다.

이한영 DS자산운용 주식운용1본부장은 “완성차업체 등 배터리사업에 뛰어든 기업이 많아지는 것은 소재 기업에는 기회”라며 “배터리기업은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일본산 중국산이 아니라 한국산 소재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효성첨단소재는 섬유 소재 기업에서 그린 소재 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사례다. 타이어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인 타이어코드 업체에서 수소 테마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 회사는 수소연료탱크용 탄소섬유 시장 선두 기업으로 꼽힌다.

기업들의 미래를 향한 투자가 친환경 테마와 만난 2021년, 한국의 소재산업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고 있다는 평가다.

고재연/고윤상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