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현지시간) 싱가포르 그랜드 콥튼 워터프론트 호텔에서 열린 ‘2026 한-아세안 포럼’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지오폴리틱스인사이트
11월 6일(현지시간) 싱가포르 그랜드 콥튼 워터프론트 호텔에서 열린 ‘2026 한-아세안 포럼’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지오폴리틱스인사이트
지오폴리틱스인사이트가 주관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KUAC)가 협력한 ‘2026 한-아세안 포럼(Korea–ASEAN Forum 2026)’이 11월 6일(현지시간) 싱가포르 그랜드 콥튼 워터프론트 호텔(Grand Copthorne Waterfront Hotel Singapore)에서 열렸다.

‘CSP 발전 비전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한국,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5개국 연사 15명을 포함해 외교·안보 및 지역 연구 전문가 26명이 참석했다. 포럼은 기조연설과 두 개의 발표·토론 세션으로 진행됐다.

이번 포럼은 2025년 10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발표한 3대 CSP 발전 비전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한-아세안 협력의 정치·안보 분야 확대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아세안의 역할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기조연설에 나선 로렌스 앤더슨(Lawrence Anderson) 전 대사(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 S.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원(RSIS) 선임연구위원)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불확실성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라며 “과제는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아세안 협력의 3대 우선 과제로 ▲선언보다 실행 가능한 구체적 사업에 집중할 것 ▲초국가 범죄 대응, 인공지능(AI)·사이버 보안, 해저케이블 보호 등 실질적 안보 협력을 확대할 것 ▲한국 사회에서 아세안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일 것을 제시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과 아시아태평양안보협력이사회(CSCAP)를 활용해 북한과의 대화 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정인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관리처장(전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이 좌장을 맡은 제1세션에서는 ‘CSP 발전 비전 이행을 위한 한-아세안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박민정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연구교수는 정부가 3대 축, 12개 분야, 36개 실천과제로 구성된 이행 계획을 마련해 아세안 측과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이 아세안의 ‘행동하는 파트너(Action Partner)’가 되려면 충분한 재원과 범정부 차원의 조정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베트남에 집중된 협력 구조를 넘어 동남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지역 전략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강준모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강화되는 원산지 규정에 대응하려면 한-아세안 협력의 초점이 ‘저비용 생산기지’에서 ‘최고 역량 생산기지’로 옮겨 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공동 인증·추적 체계, 현지 공급망, 연구개발(R&D)·인재 생태계 구축을 통해 ‘Made in Korea’를 넘어 ‘Made by Korea in ASEAN’으로 협력 범위를 확장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사라 테오(Sarah Teo) RSIS 조교수는 기존 한-아세안 협력 체계를 실질적인 전략 협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실질적인 전략대화 강화 ▲예방외교와 신뢰 구축 ▲외교와 실질적 안보 성과의 연계를 우선 과제로 꼽았다.

토론에서는 마이트리 아웅트윈(Maitrii Aung-Thwin)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아시아연구소(ARI) 부소장이 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넘어 지역 국가들과 함께 역량을 키우는 방안을 질문했다. 이충열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강준모 연구위원의 발표에 대해 논평했다. 퐁피숫 부스바랏(Pongphisoot Busbarat) 태국 쭐랄롱꼰대학교 안보국제문제연구소(ISIS) 소장은 2027년까지 한-아세안 대화조정국을 맡는 태국의 입장에서 에너지 공급 차질에 대비한 공동 훈련과 온라인 스캠 대응 협력 등 두 가지 시범사업을 2027년까지 출범시키자고 제안했다.

신재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지오폴리틱스인사이트 대표가 좌장을 맡은 제2세션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아세안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장기적인 협력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남아 국가들이 남북 대화와 주변국 간 소통을 위한 장소와 채널을 제공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북한이 개방에 나설 경우 투자(Investing), 개혁 경험 전수(Instructing), 역내 협의체 초청(Inviting)이라는 ‘3I’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스트랫베이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 빅터 안드레스 ‘딘도’ C. 만히트(Victor Andres 'Dindo' C. Manhit) 창립자 겸 CEO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회복력과 단합에 기여할 기회를 맞았다며, 이재명 정부의 단계적 북핵 해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섹산 아난타시리키앗(Seksan Anantasirikiat) 태국 국제문제연구센터(ISC) 선임연구위원은 학자와 실무자가 참여해 기후 적응, 재난 관리, 인도적 지원 등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아세안+2(남북)’ 협의체 구상을 제안했다.

토론에서 김형종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시아센터장은 대북제재 준수를 전제로 지역 개발, 농업, 문화유산 등 북한이 중시하는 분야에서부터 교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2027년 싱가포르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을 트랙2 협력을 넓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신중론도 나왔다. 박재한 RSIS 조교수는 “6자회담도 풀지 못한 문제를 아세안이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한-아세안 협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회의와 협력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하마드 와파 카리스마(Muhammad Waffaa Kharisma) 인도네시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위원은 “아세안의 강점은 ‘영향력(leverage)’이 아닌 ‘접근성(access)’에 있다. 부담이 적은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재혁 지오폴리틱스인사이트 대표는 “이번 포럼은 한-아세안 CSP를 선언에서 실행으로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협력 과제를 확인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아세안 전문가들의 솔직한 시각을 들을 수 있었던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한국과 아세안 전문가 간 정책 대화와 공동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지오폴리틱스인사이트는 이번 포럼의 발표와 토론 내용을 담은 자료집을 바탕으로 정책 제언과 후속 연구를 이어가는 한편, 2029년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40주년을 앞두고 한국과 아세안 정책·학술 전문가 간 교류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배경민 한경닷컴 기자 bk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