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탄광의 카나리아는 어디?[박신영의 개장전 요것만]


1. 미국 회사채 시장에 30년 만의 이상 신호


미국 회사채 시장에서 최근 30년 동안 보기 어려웠던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기업들의 채권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기업들의 채권시장은 별다른 불안 없이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월가에서는 신용시장 전체가 위험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인지, 부실 위험이 일부 취약기업에만 국한된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국채금리가 수십 년 만의 높은 수준으로 오른 가운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기업들의 대규모 차입이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20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국 회사채 시장에서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CCC등급 채권의 신용스프레드가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반면 이보다 신용도가 높은 BB등급과 B등급 투기등급 채권, 투자적격등급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는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용스프레드는 회사채 금리와 같은 만기의 미국 국채금리 간 차이를 뜻합니다. 미국 국채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기업은 돈을 빌릴 때 국채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합니다. 이때 추가로 부담하는 금리가 신용스프레드입니다. 기업의 부도 위험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신용스프레드도 확대됩니다.

매뉴라이프 존핸콕 인베스트먼트의 맷 미스킨 공동 최고투자전략가는 현재 회사채 시장이 사실상 전례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CCC등급 채권의 스프레드가 이처럼 급격히 확대됐는데도 회사채 시장 전체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CCC등급 시장은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경고하지만, 나머지 시장은 아무 문제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경제통계 데이터베이스인 FRED에 따르면 지난 16일 CCC등급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는 12.97%포인트까지 확대됐습니다. 같은 만기의 미국 국채보다 약 12.97%포인트 높은 금리를 지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국채금리가 5%라면 CCC등급 회사채의 요구수익률은 단순 계산으로 약 17.97%에 이릅니다.

반면 투자적격등급에 속하는 BBB등급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는 1.06%포인트에 그쳤습니다. 국채금리가 5%라고 가정하면 BBB등급 회사채의 요구수익률은 약 6.06%입니다. 신용도가 높은 기업과 낮은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필요한 비용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업 신용등급은 AAA부터 AA, A, BBB, BB, B, CCC 순으로 낮아집니다. BBB등급까지는 투자적격등급으로 분류되고, BB등급 이하는 투기등급 또는 정크본드로 불립니다. CCC등급은 투기등급 가운데서도 부도 위험이 매우 높은 기업들이 속하는 구간입니다. 현재는 가장 취약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만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습니다.

미스킨은 CCC등급 채권의 스프레드가 이처럼 확대된 현상이 과거 주요 금융위기 때도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 닷컴버블 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당시에도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먼저 악화한 뒤 금융시장 전반으로 불안이 확산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CCC등급 채권의 스프레드가 급등하면 다른 회사채와 위험자산도 함께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는 CCC등급 채권만 크게 압박받고,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회사채 시장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스킨은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이미 부실 위험 수준에 도달했지만, 광범위한 위험자산 시장은 거의 완벽한 상황을 반영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부실기업 채권시장은 이미 위기가 시작된 것처럼 움직이는 반면, 주식시장과 우량 회사채 시장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스킨은 현재 상황을 시장에서 관찰된 가장 큰 양극화 현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문제는 시장이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지, 이번에는 정말 다른 것인지”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시장은 일부 기업의 개별적인 문제일 뿐 금융시스템 전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신용시장의 위험이 특정 취약기업에만 국한된 것인지, 다른 기업으로 확산하는 초기 단계인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회사채 시장의 불안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 미국 10년물과 30년물 국채금리는 수십 년 만의 높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기사에 제시된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5.126%, 30년물 국채금리는 5.451%입니다.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이 되는 금리도 높아집니다. 여기에 신용스프레드까지 확대되면 기업이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차입금리는 더 가파르게 오릅니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기존 부채를 차환하거나 새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대규모 차입도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올랐습니다.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려면 고성능 반도체와 서버, 전력·냉각 설비 등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일부 기업은 이런 투자를 위해 단기간에 많은 돈을 빌리고 있습니다. 높은 금리로 차입 비용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가 예상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면 기업의 재무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AI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는 최근 신용시장 불안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코어위브의 주식과 채권은 AI 관련 차입 부담에 대한 우려로 동반 하락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코어위브가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위해 빌린 자금의 비용과 향후 투자 수익률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기업이 차입금으로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면 투자 수익이 이자 비용보다 충분히 높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이 성장하더라도 재무구조가 악화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부 월가 애널리스트는 코어위브의 자금 조달 비용 상승과 투자 수익성에 대해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AI 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크지만, 투자 확대 과정에서 일부 기업이 재무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코어위브가 발행한 표면금리 9.625%, 2032년 만기 회사채의 만기수익률(YTM)은 14.9%를 기록했습니다. 지난주 15%를 넘었던 최고 수준에서는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약 1082bp를 기록했습니다. 금요일보다 약 2% 하락했지만 여전히 위험 수준입니다. CDS는 채권 발행 기업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투자자가 보험료 성격의 비용을 내고 보호를 받는 파생상품입니다. 일반적으로 CDS 프리미엄이 1000bp를 넘으면 해당 기업이 심각한 신용위험에 처해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야누스헨더슨의 멀티섹터 및 기업신용 글로벌 책임자인 존 로이드는 “시장은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차환 위험에 노출된 기업들을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며 “코어위브는 이런 우려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운용하는 멀티섹터 인컴 펀드는 코어위브의 2031년 만기 채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로이드는 “코어위브는 어떤 형태로든 성장하기 위해 채권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기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코어위브가 사업을 확장하려면 지속적으로 외부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채권시장에서 요구하는 금리가 높아질수록 성장에 필요한 자금 조달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JP모건자산운용은 최근 CCC등급 채권시장의 불안이 AI 산업 전체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데이비드 레보비츠 JP모건자산운용 대체투자전략 책임자는 마켓워치에 “이는 성장통”이라고 말했습니다. AI 산업이 빠르게 확대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고 일부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산업 전체의 붕괴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레보비츠는 AI가 장기적으로 금융시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다만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AI 투자가 모든 기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으며, 자금 조달 능력과 수익성에 따라 기업들의 성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CCC등급 채권시장의 불안이 회사채 시장 전체로 확산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입니다. JP모건이 지난 16일 발표한 신용시장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하이일드 채권지수에서 CCC등급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8.6%로 줄었습니다. 사상 최저 수준입니다.

CCC등급 채권의 비중이 작아지면서 이들 채권의 가격이 급락하더라도 하이일드 채권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비중을 절대 금액으로 환산하면 2014년 약 2700억달러였던 CCC등급 채권 규모는 현재 약 1300억달러 수준으로 줄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비중이 절반 이하로 낮아졌고 전체 시장 규모도 커지지 않아 금액 자체도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입니다.

CCC등급 채권이 줄어든 배경에는 차입자들의 이동이 있습니다. 과거 공개 채권시장에서 CCC등급 채권을 발행하던 취약기업들이 지금은 사모 크레딧과 레버리지드론(차입 대출)으로 자금을 구하고 있습니다. 사모 크레딧 시장 규모는 약 2조1000억달러로 커졌습니다.

그 결과 공개 하이일드 지수는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높은 BB등급이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CCC등급 채권 가격이 급락하더라도 하이일드 채권지수 전체로 번지는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다만 시장 전체로 보면 해석이 달라집니다. 가장 위험한 신용이 가격이 매일 공개되지 않는 사모시장에 쌓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염 경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음 충격이 올 때 경보가 늦게 울리는 곳으로 위험이 옮겨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로젠버그리서치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경제학자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오라클을 ‘탄광 속 카나리아’에 비유했습니다. 탄광 속 카나리아는 위험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에 나타나는 조기 경고 신호를 뜻합니다.

로젠버그에 따르면 오라클과 알파벳, 아마존, 메타는 올해 2280억달러 이상의 회사채를 발행했습니다. 이들 기업의 발행 규모는 전 세계 투자적격등급 회사채 시장의 약 10%를 차지합니다.

오라클의 순부채는 약 1320억달러이며, S&P 신용등급은 BBB-입니다. 투자적격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입니다. 로젠버그는 오라클의 위치가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오라클은 정크등급의 네오클라우드 기업들과 투자적격등급의 대형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오라클이 정크등급으로 강등된다면 신용위험이 다른 기업들로 전염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2. 중국 빅테크, 엔비디아 칩 350억달러 주문 폭주


미국의 반도체 수출규제에도 중국 기업들의 엔비디아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3대 기술기업이 엔비디아의 신형 그래픽처리장치(GPU)를 350억달러 이상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제품은 미국의 수출규제를 충족하도록 설계돼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반도체보다 성능이 낮습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고성능 반도체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대체 제품에 주문이 몰리고 있습니다.

중국 전체 고객사의 주문량은 엔비디아가 내년에 전 세계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의 두 배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엔비디아는 일부 고객에게 요청 물량의 5~10%만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대규모 주문은 미국의 수출규제가 중국의 AI 반도체 공급을 제한하고 있지만, AI 연산 능력에 대한 수요 자체는 여전히 강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 2명을 인용해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텐센트가 엔비디아의 신형 RTX PRO 5500 그래픽카드를 총 300만 개 이상 주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제품 표시가격을 기준으로 한 주문금액은 350억달러를 넘습니다. RTX PRO 5500의 가격은 개당 약 1만1400달러입니다. 중국 3대 기술기업의 주문량이 300만 개를 넘는 만큼 전체 주문금액도 350억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대규모 주문 사실은 이전까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규제를 충족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연산 능력을 제공하는 제품을 확보하기 위해 주문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RTX PRO 5500은 고성능 전문 컴퓨터인 워크스테이션용으로 설계된 제품입니다.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반도체를 대규모로 연결하는 데이터센터용 시스템과는 용도가 다릅니다. 그럼에도 현재 중국 기업들이 구매할 수 있는 엔비디아 제품 가운데 성능이 높은 제품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중국 기업들의 주문이 폭증하면서 엔비디아의 공급 능력에도 한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고객사와 협력업체에 주문받은 RTX PRO 5500을 모두 공급할 수 있다고 보장하기 어렵다고 전달했습니다. 중국 기술기업들의 수요가 당초 계획한 생산량을 크게 웃돌기 때문입니다.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협력업체들에 요청 물량의 5~10%만 공급받을 수 있다고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2027년 전 세계에서 생산할 수 있는 RTX PRO 5500 그래픽카드가 최대 300만 개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중국 전체 고객사의 주문량은 이미 600만 개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기업들의 주문량만으로도 엔비디아의 2027년 전 세계 생산 계획을 두 배 이상 웃돕니다.

중국 기업들이 RTX PRO 5500에 대규모 주문을 넣는 배경에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규제가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최첨단 AI 반도체를 확보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블랙웰 아키텍처 기반 B300 데이터센터용 반도체는 미국의 수출규제에 따라 중국 기업에 판매할 수 없습니다. 호퍼 아키텍처 기반 H200은 개별 심사와 허가 조건에 따라 수출 여부가 결정됩니다.

반면 RTX PRO 5500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규제를 충족하는 제품입니다. H200이나 B300보다 성능은 낮습니다. H200과 B300은 수많은 반도체를 연결해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시키거나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용으로 설계됐습니다.

RTX PRO 5500이 최첨단 데이터센터용 반도체를 직접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고성능 AI 반도체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출이 허용되는 제품을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수출규제로 최첨단 반도체 구매가 제한되자 상대적으로 성능이 낮은 제품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것입니다.

관계자들은 중국 기업들이 RTX PRO 5500을 주로 AI 추론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AI 연산은 크게 학습과 추론으로 나뉩니다. 학습은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AI 모델을 개발하고 성능을 높이는 과정입니다. 추론은 이미 학습된 AI 모델을 실제 서비스에 활용하는 과정입니다. 챗봇이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거나 AI가 문서와 이미지를 생성하는 작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으로 추론은 초대형 AI 모델을 처음부터 학습시키는 작업보다 적은 연산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은 RTX PRO 5500을 활용해 챗봇 등 AI 서비스를 운영하고 확대하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 AI 모델의 지식 증류를 활용해 학습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습니다.

로이터가 확인한 제품 사양에 따르면 RTX PRO 5500의 성능은 엔비디아의 RTX 6000D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RTX 6000D는 엔비디아가 지난해 중반 미국의 수출규제를 충족하도록 성능을 낮춰 출시한 제품입니다.

중국 기업들의 태도는 지난해와 크게 달라졌습니다. 로이터는 지난해 중국 주요 기술기업들이 RTX 6000D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일부 기업은 주문을 거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중국 기업들은 RTX 6000D의 성능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향후 수출규제를 완화해 더 성능이 높은 엔비디아 반도체의 판매를 허용할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점차 약해졌습니다. 미국의 수출규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중국의 AI 연산 능력 부족도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은 더 성능이 높은 제품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확보할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RTX 6000D와 성능이 비슷한 RTX PRO 5500이 새로운 대체 제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RTX 6000D는 이후 단종됐으며, 중국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두 배로 올랐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과거에는 구매를 꺼렸던 성능의 제품까지 적극적으로 확보하려는 것은 AI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수출규제로 중국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점유율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과거 중국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시장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했지만, 미국 정부가 최첨단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면서 중국에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RTX PRO 5500 주문은 중국 기업들이 여전히 엔비디아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최첨단 데이터센터용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더라도 수출규제를 충족하는 다른 제품을 통해 상당한 잠재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AI 모델 개발 경쟁을 이어가는 동시에 다양한 산업에 AI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연산 능력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수출규제가 첨단 반도체 공급을 제한하는 동안 중국 내 AI 연산 수요는 확대되면서 공급 부족이 심화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수출규제는 중국 기업들이 자국 반도체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중국 정부도 자국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반도체 사용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화웨이는 중국 AI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전반적으로 미국의 최첨단 제품과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해외 장비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AI 반도체뿐 아니라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일부 해외 장비와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은 자국산 반도체 사용을 늘리면서도 엔비디아의 수출 가능 제품을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의 주문이 급증했지만 엔비디아가 RTX PRO 5500 생산을 크게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엔비디아가 2027년부터 차세대 AI 반도체 플랫폼인 루빈(Rubin) 생산에 상당한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로이터가 인용한 관계자 2명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2027년 대만 TSMC 생산능력의 상당 부분을 루빈에 배정할 전망입니다. 루빈은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엔비디아의 차세대 플랫폼입니다. 엔비디아가 루빈 생산을 우선하면 RTX PRO 5500과 같은 제품에 배정할 수 있는 생산능력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습니다.

토큰 가격은 AI가 답변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성능이 낮아진 수출규제용 반도체라도 대량으로 확보해 추론 인프라를 구축하면 시장에 공급되는 토큰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추론은 학습보다 연산 부담이 적어 성능이 낮은 반도체로도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중국 대형 기술기업들은 이미 점유율을 놓고 토큰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추론 역량이 커질수록 글로벌 토큰 가격의 상한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이는 높은 토큰 가격을 전제로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온 미국 AI 기업들의 마진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올해 82% 오른 데이터독…번스타인 “42% 추가 상승 여력”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데이터독의 주가가 올해 들어 82% 상승했지만, 앞으로도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AI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데이터독 서비스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19일(현지시간) 투자회사 번스타인은 데이터독의 투자 의견을 기존 ‘시장수익률’에서 ‘시장수익률 상회’로 높였습니다. 목표주가도 237달러에서 350달러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지난 16일 종가보다 약 42% 높은 수준입니다.

데이터독은 기업의 정보기술(IT) 시스템 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입니다. 이런 서비스를 ‘관측(Observability)’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이 운영하는 서버와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에 작은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데이터독은 시스템의 작동 상태를 실시간으로 수집합니다. 서버의 처리 속도와 오류 기록, 이용자의 요청이 처리되는 과정 등을 한 화면에서 보여줍니다.

데이터독은 문제가 발생할 조짐을 미리 발견하고,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줍니다. 애플리케이션의 응답 속도가 느려지거나 오류가 늘어나면 담당자에게 경고를 보내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기 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서버에 사용자가 너무 많이 몰린 것인지, 데이터베이스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특정 기능에 오류가 발생한 것인지 등을 추적해 엔지니어들이 시스템을 일일이 확인하는 시간을 줄여줍니다.

최근에는 AI 서비스까지 감시 범위를 넓혔습니다. 기업이 사용하는 AI 모델의 토큰 사용량과 응답 속도, 오류 발생률 등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데이터독은 기업의 IT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왜 문제가 생겼는지를 한곳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관제탑입니다.

데이터독은 감시 대상 서버 수와 서비스 사용량 등에 따라 요금을 받습니다. 고객 기업은 매달 이용료를 내고 서비스를 사용합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 주요 클라우드를 비롯해 700개가 넘는 외부 서비스와 연동됩니다.

번스타인이 데이터독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가장 큰 이유는 AI 기업들의 빠른 성장입니다. 번스타인의 피터 위드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자체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대형 AI 연구소들의 기업용 토큰 사용량이 전 분기보다 최소 50%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위드 애널리스트는 특히 AI를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른바 ‘본 인 AI(Born in AI)’ 기업들의 토큰 사용량은 이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AI 기업들의 토큰 사용량이 늘어나면 서버와 클라우드가 처리해야 하는 작업도 많아집니다. 그만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데이터독의 서비스도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번스타인은 AI 에이전트 확산에도 주목했습니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지시를 받아 정보를 찾거나 여러 업무를 스스로 처리하는 AI 서비스입니다.

위드 애널리스트는 뮤즈(Muse), 닷츠(Dots) 등 소비자용 AI 에이전트가 출시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기존의 장기 성장 전망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낮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I 에이전트 이용이 늘어나면 기업들이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와 작업도 증가합니다. AI가 여러 시스템에 접속해 정보를 찾고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이에 따라 AI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주는 데이터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위드 애널리스트는 “소비자용 AI 에이전트 이용이 늘어나면 데이터독의 기존 고객들도 증가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시스템 모니터링 서비스를 확대해야 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월가에서도 데이터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합니다. 금융정보업체 LSEG에 따르면 데이터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49명 가운데 46명이 매수 또는 적극 매수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적극 매수는 14명, 매수는 32명입니다. 보유 의견은 2명, 시장수익률 하회 의견은 1명이었으며 매도 의견은 없었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목표주가는 287.53달러로, 19일 주가인 260.36달러보다 약 10.4% 높습니다. 가장 높은 목표주가는 350달러, 가장 낮은 목표주가는 158달러입니다. 데이터독 주가는 올해 들어 약 82% 상승했습니다.

다만 번스타인은 데이터독에도 위험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큰 우려는 고객 기업들이 데이터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할 가능성입니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외부 소프트웨어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 직접 시스템을 만드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무료로 사용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의 경쟁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위드 애널리스트는 “과거에도 고객 기업들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외부 서비스를 자체 시스템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AI 연구소들은 당장 이런 문제를 고민할 여유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는 “초고속 성장 중인 AI 연구소들은 자체 시스템 개발에 집중할 여력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며 “단기적으로는 우려가 크지 않지만, 이들 기업이 성장하고 안정기에 접어들면 장기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4. 오픈AI, 앤트로픽 IPO 전에 투자금 선점 나서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경쟁사 앤트로픽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대규모 투자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앤트로픽이 증시에 상장하기 전에 주요 투자자들의 자금을 먼저 확보하고, 두 회사의 기업가치가 직접 비교되는 상황을 피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2명을 인용해 오픈AI가 11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앤트로픽 IPO 이전에 투자 약정을 확보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오픈AI가 추진하는 투자 유치 규모는 약 300억달러입니다. 기업가치는 1조4000억달러 이상으로 평가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그룹과 아부다비 투자회사 MGX 등 기존 투자자들이 참여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오픈AI가 투자 유치를 서두르는 핵심 이유는 앤트로픽과 주요 투자자층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두 기업은 모두 최첨단 AI 모델을 개발하는 회사로, 기관투자자와 국부펀드 등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가 두 기업에 동시에 거액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 규모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앤트로픽 IPO에 투자될 수 있는 자금을 오픈AI가 먼저 확보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실제로 오픈AI는 지난주 장기 주식투자 펀드와 국부펀드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같은 기간 앤트로픽도 자체 투자자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소식통들은 오픈AI의 이번 자금 조달이 규모에 비해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오픈AI가 자금 조달을 서두르는 또 다른 이유는 앤트로픽의 IPO 과정에서 공개될 재무정보입니다. 앤트로픽이 상장하면 투자자들은 매출 규모와 성장률, 수익성, 비용 구조 등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두 기업은 비상장사라는 이유로 제한적인 재무정보만 공개해 왔지만, 앤트로픽이 상장하면 두 회사의 사업 성과를 비교할 기준이 생깁니다.

특히 매출을 계산하는 방식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오픈AI는 파트너 기업에 지급하는 몫을 제외한 순매출 기준으로 실적을 기록합니다. 오픈AI는 앤트로픽이 제3자 클라우드 업체를 통해 판매한 계약의 전체 금액을 매출로 계산해 매출 규모를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앤트로픽은 기존 회계 기준을 따르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앤트로픽의 상세한 재무정보가 공개되면 투자자들은 두 회사의 매출 규모뿐 아니라 실제 성장 속도와 수익성까지 비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과정에서 오픈AI의 세라 프라이어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도 매출 성장과 재무 전망에 관한 추가 설명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픈AI는 지난 3월 비상장 상태에서 1220억달러를 조달했습니다. 당시 기업가치는 8520억달러로 평가됐으며, 아마존은 최대 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번에는 약 300억달러를 추가로 조달하는 방안을 협상하고 있습니다.

비상장 상태에서도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오픈AI가 IPO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배경으로 해석됩니다. 기업이 IPO를 추진하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픈AI처럼 기관투자자와 국부펀드, 글로벌 대기업으로부터 수백억달러를 확보할 수 있다면 당장 증시에 상장할 필요가 줄어듭니다.

상장기업이 되면 정기적으로 실적을 공개하고 투자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분기별 실적과 수익성에 대한 시장의 압박도 커질 수 있습니다. 반면 비상장 상태에서는 일반적으로 상장기업보다 공개해야 하는 정보가 적고, 장기 투자 계획을 추진할 때 상대적으로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상장기업도 투자자들에게 재무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상장을 늦춘다고 모든 정보 공개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픈AI는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한 상장 시점을 선택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분석입니다.

앤트로픽이 먼저 상장하면 오픈AI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앤트로픽은 상장 과정에서 상세한 재무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상장 이후에도 정기적인 실적 발표를 통해 사업 현황을 투자자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반면 오픈AI가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면 공개해야 하는 정보의 범위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입니다.

이런 차이는 기술 변화와 가격 경쟁이 빠른 AI 산업에서 중요할 수 있습니다. AI 모델의 서비스별 매출과 비용 구조가 상세하게 공개되면 경쟁사는 어느 사업에서 높은 수익이 발생하고 어느 사업의 수익성이 낮은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AI 모델 운영에 필요한 추론 비용과 서비스 가격에 대한 정보도 경쟁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월별 매출 증가 속도와 고객 구성 등이 공개되면 특정 사업의 성장 둔화 여부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앤트로픽이 먼저 IPO를 진행하면 오픈AI는 경쟁사의 기업가치가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상장할 때 공모가가 결정되고, 상장 이후에는 투자자들의 매매를 통해 주가가 형성됩니다. 앤트로픽의 공모가와 상장 후 주가 흐름은 오픈AI의 향후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비교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앤트로픽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상장 후에도 주가가 오르면 오픈AI 역시 높은 기업가치를 주장하는 데 유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앤트로픽이 기대보다 낮은 기업가치로 상장하거나 주가가 급락하면 오픈AI는 IPO 시기를 늦출 수 있습니다.

먼저 상장한 기업이 시장의 첫 평가와 변동성을 감수하는 동안, 나중에 상장하는 기업은 그 결과를 참고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이는 오픈AI가 공식적으로 밝힌 전략은 아닙니다. 경쟁사보다 늦게 상장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점을 설명하는 해석입니다.

최근 글로벌 증시의 불안도 오픈AI가 IPO 시점을 신중하게 결정할 이유로 꼽힙니다. 9월 이후 국제유가 변동성과 국채금리 상승, AI 기업의 높은 기업가치에 대한 우려가 기술주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막대한 차입금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떠올랐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입니다. 코어위브는 빠른 사업 확장을 위해 약 500억달러를 빌렸습니다. 지난주 투자자들이 부채 부담을 우려하면서 코어위브의 주가와 채권 가격이 함께 급락했습니다.

AI 관련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도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최근 2주가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총 1조6000억달러 감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상장 계획을 잇달아 조정하고 있습니다. 블랙스톤이 투자한 에어트렁크 리츠, 엔비디아가 투자한 퍼머스, 소프트뱅크가 지원하는 SB에너지 등은 상장 계획을 철회하거나 일시 중단했습니다. 원자력 서비스 기업 홀텍도 지난달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미국 증시 상장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증시가 불안할 때 상장하면 기업이 기대했던 것보다 낮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상장 이후 주가가 급락할 경우 기업과 기존 투자자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상장 시장에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면 시장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상장을 기다리는 전략이 가능하다는 분석입니다.

5. 금보다 더 오른 구리…월가 “AI 조정에도 더 오를 것”


AI 관련 주식의 거품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구리 가격의 상승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AI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전력망과 국방 분야에서도 구리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리는 올해 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20일 기준 구리 가격은 올해 들어 15.8% 상승했습니다. 최근 12개월 동안의 상승률은 30%를 넘었습니다. 반면 금 선물 가격은 올해 들어 4.11% 하락했고, 최근 12개월 동안에도 4.52% 떨어졌습니다. 금 현물 가격 역시 올해 들어 약 4%, 최근 12개월 동안 4.89% 하락했습니다.

구리는 전자제품과 건설,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에서 사용되는 핵심 금속입니다.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 구리 수요도 늘기 때문에 구리 가격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집니다.

최근에는 구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건설, 국방 분야의 투자가 확대되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안정적인 구리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광산개발업체 아이반호 일렉트릭의 테일러 멜빈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출연해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특히 미국에서 구리 광산 사업을 하기에 매우 좋은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는 이런 금속을 핵심 광물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모든 의미에서 전략 광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구리는 전력 공급 장치와 냉각 설비에 폭넓게 사용됩니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처럼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반도체를 가동하려면 대규모 전력 공급 설비가 필요합니다. 구리는 서버 내부의 전선과 전력 연결 장치, 여러 장비에 전기를 나눠주는 구리 막대인 버스바 등에 사용됩니다.

고성능 GPU는 작동할 때 많은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냉각이 필수입니다. 최근 데이터센터에서 도입이 늘고 있는 액체냉각 시스템에서는 구리로 만든 냉각판과 열교환기 등을 활용해 반도체의 열을 외부로 전달합니다.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망에도 구리가 사용됩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데이터센터까지 전달하려면 변압기와 전력 케이블, 배전 설비가 필요하며, 이들 장비에도 구리가 들어갑니다. 다만 장거리 고압 송전선에는 알루미늄도 널리 사용됩니다.

AI 서버는 일반 서버보다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력 공급과 냉각 설비에 더 많은 구리가 사용될 수 있습니다.

국방 분야에서도 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전투기에는 레이더와 통신 장비, 전자제어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한 전선과 전자회로 등에 구리가 들어갑니다. 군함에서는 엔진과 발전기, 전력 배분 장치, 레이더 및 통신 설비 등에 사용됩니다.

미사일에는 목표물을 탐지하고 비행 방향을 조정하는 유도장치와 전자회로, 전기 연결 부품 등에 구리가 사용됩니다. 드론에도 모터 코일과 배터리 연결 장치, 통신·제어 시스템을 위해 구리가 필요합니다.

현대 무기체계가 첨단화할수록 레이더와 센서, 통신 장비, 전자제어 장치의 중요성도 커집니다. 이들 장비를 작동시키는 데 구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방 예산 확대도 구리 수요를 늘리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국제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AI 데이터센터와 국방 현대화를 구리 수요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최근 월가에서는 AI 투자 규모가 지나치게 커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지속 가능하냐는 의문입니다. 이런 우려로 기술주가 최근 조정을 받았지만, 멜빈 CEO는 구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멜빈 CEO는 AI 산업의 구리 수요가 가격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기술 산업은 구리의 새로운 수요처이며, 이 분야의 구리 수요는 가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대형 기술기업이 초대형 데이터센터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면서 구리 가격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전체 투자비 가운데 구리 구매 비용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구리 가격이 오르더라도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 자체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뜻입니다. 가격이 변해도 수요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가격 비탄력적 수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멜빈 CEO는 국방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국가안보와 국방 예산이라는 새로운 수요 분야에서도 이런 비탄력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각국 정부가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구리를 확보할 때 가격 상승만을 이유로 투자를 쉽게 줄이지는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멜빈 CEO는 “최근 기술주 가치가 일부 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식시장의 투자심리가 변하는 것과 실제 산업이 성장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이들 산업은 앞으로도 성장하면서 구리의 추가 수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미국의 구리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구리 가격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상무부는 2025년 정제 구리에 대해 2027년 1월 1일부터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제안된 관세에 대한 최종 결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정제 구리는 광산에서 채굴한 구리 광석을 가공해 산업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구리입니다. 시장에서는 미국이 정제 구리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에 대비해 구리를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애버딘 인베스트먼츠의 선임 투자책임자인 이언 파일은 “미국의 관세 부과 가능성 때문에 현재 세계 구리 재고의 상당 부분이 미국에 보관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문제는 미국에 쌓인 구리 재고가 다른 국가의 시장에도 공급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에 구리가 집중되면 다른 지역에서는 구리를 구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는 미국 이외 지역의 구리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 구리 소비국인 중국의 재고가 부족하다는 점도 구리 가격 상승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언 파일은 “중국의 구리 재고는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보이며, 현지 시장에서는 구리를 확보하기 위해 추가로 지불하는 가격인 프리미엄이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에서 구리를 사려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구매자들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파일은 지난 15일 보고서에서도 구리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장의 대표 사례로 꼽았습니다. 그는 “구리 공급을 확대하려면 구리 가격이 높은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광산업체들의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구리 광산을 새로 개발하거나 기존 광산의 생산량을 늘리려면 많은 자금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더라도 공급을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파일은 미국의 관세 발표 전후로 구리 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관세 발표를 전후해 가격 조정이 나타날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면서도 “수요와 공급 등 시장의 기초 여건은 분명히 가격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구리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도 커졌다”고 전망했습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