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로 쿠치넬리 패딩 조끼를 입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사진=한경DB, 연합뉴스
브루넬로 쿠치넬리 패딩 조끼를 입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사진=한경DB, 연합뉴스
전체 글로벌 명품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명품 브랜드 간에도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와 루이비통·디올 등을 보유한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실적이 엇갈렸다.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올해 3분기 두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LVMH는 중국 소비 부진 타격으로 핵심 사업인 패션·가죽제품 부문이 역성장했다. 고객층과 제품 구성, 유통 전략에 따라 명품업체 간 실적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치넬리 13.5% 성장…LVMH 핵심 사업은 역성장

20일 양사 실적 발표 자료에 따르면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올해 1~9월 누적 매출은 11억2360만유로(약 1조6802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0.2% 증가했다. 환율 영향을 제외한 고정환율 기준 증가율은 13.3%다. 3분기 매출은 3억7420만유로(약 5596억원)로 고정환율 기준 13.5%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LSEG가 집계한 애널리스트 전망치인 3억7000만유로(약 5533억원)를 웃도는 실적이다.

LVMH는 같은 기간 571억4800만유로(약 85조458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2% 감소했지만 환율과 사업 범위 변동을 제외한 유기적 매출 증가율은 2%였다. 3분기 유기적 매출 증가율은 1%에 그쳤다.

특히 그룹 전체 매출의 약 46%를 차지하는 패션·가죽제품 부문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이 부문의 1~9월 매출은 263억9100만유로(약 39조4648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했다. 유기적 매출 기준으로도 2% 줄었다. 2분기 1% 증가하며 회복 조짐을 보였지만 3분기에는 5% 감소하며 다시 역성장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의류 중심의 단일 브랜드 기업인 반면 LVMH는 패션뿐 아니라 주류, 화장품, 시계·보석, 유통사업까지 운영하는 복합기업이다. 매출 규모도 LVMH가 약 51배 크다. 그렇지만 성장률만 놓고 비교하면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LVMH 전체는 물론 핵심 패션·가죽제품 사업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소비 둔화에도 성장…고객층 차이가 변수

실적 격차를 설명하는 핵심 변수 중 하나는 고객층이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캐시미어와 고급 기성복을 중심으로 초고가 시장을 공략해왔다. 브랜드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소재와 디자인, 제작 방식에 가치를 두는 소비자를 주요 고객으로 삼는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등이 착용한 모습이 포착돼 주목받았다.

이 회장은 올해 3월 유럽 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할 당시 공항 패션으로 브루넬로 쿠치넬리 조끼를 착용했다. 앞서 이 회장이 지난해 9월 한 일본 교토 여행 중에 한 라멘집에서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포착됐을 때도 입고 있었던 제품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이 회장과의 이른바 '깐부 회동' 자리에서 브루넬로 쿠치넬리 조끼를 착용했다.

뿐만 아니라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도 이 브랜드 옷을 입은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이 같은 사업 구조는 경기 변화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명품 입문 고객보다 고액 자산가의 소비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고가 가방과 액세서리 등으로 고객층을 넓혀온 대형 명품 브랜드와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지역별 실적에서도 차이가 확인된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매출은 미주에서 고정환율 기준 20%, 아시아에서 14%, 유럽에서 7% 증가했다. 특히 중국이 아시아 매출 증가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LVMH는 3분기 중국의 수요 둔화가 패션·가죽제품 사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의 부동산시장 침체와 경기 부진, 부유층에 대한 세무당국의 감독 강화 등이 명품 소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중국 시장에서도 브랜드별로 다른 성적표가 나왔다. 이는 중국 명품 수요가 일률적으로 위축됐다기보다 제품과 고객층에 따라 차별화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매장 확대·기존점 성장 맞물려…쿠치넬리 실적 견인

유통 전략도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성장 배경으로 꼽힌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직영 소매 매출은 7억4100만유로(약 1조1081억원)로 고정환율 기준 19%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6%다. 반면 도매 매출은 3억8260만유로(약 5721억원)로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직영 매출 증가는 신규 고객 유입과 기존 고객의 구매액 증가, 매장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측은 지난해 하반기 파리와 로스앤젤레스의 주요 매장을 이전하고 런던 매장을 확장한 효과가 올해 실적에 반영됐다고 밝혔다. 올해 9월 말 기준 직영 매장은 142개로 지난해 말보다 6개 늘었다.
서울 시내 한 루이비통 매장의 모습. 2025.4.16/뉴스1
서울 시내 한 루이비통 매장의 모습. 2025.4.16/뉴스1
LVMH는 사업부별로 온도 차가 뚜렷하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시계·보석 부문의 유기적 매출은 8%, 세포라 등이 포함된 선택적 유통 부문은 6% 증가했다. 주류 부문도 5% 성장했다. 패션·가죽제품 부문이 부진한 가운데 다른 사업들이 그룹 전체 매출 감소를 방어한 구조다.

LVMH 내부에서도 모든 브랜드가 부진한 건 아니다. 회사는 이탈리아 고급 의류 브랜드 로로피아나의 실적이 양호했다고 밝혔다. 로로피아나는 브루넬로 쿠치넬리와 마찬가지로 고급 소재와 의류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다만 LVMH는 로로피아나의 개별 매출 증가율을 공개하지 않았다.

쿠치넬리 전망 상향…LVMH는 중국 회복이 관건

향후 전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지난 15일 올해 연간 매출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10~11%에서 12%로 높였다. 연초 제시한 10%에서 2차례 상향 조정한 것이다. 내년에도 약 10%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지만 브루넬로 쿠치넬리 측은 지난해 하반기 진행한 매장 확장과 이전 효과가 올해 상반기에 집중됐으며 하반기로 갈수록 해당 효과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직영점 운영에 따른 임차료와 인건비, 고급 소재 조달 비용도 수익성을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LVMH의 과제는 핵심 패션·가죽제품 부문의 회복이다. 올해 상반기 해당 부문의 반복 영업이익은 61억9500만유로(약 9조2639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7% 감소했다. 그룹 전체 반복 영업이익도 4% 줄어든 86억9100만유로(약 12조9964억원)였다. 매출 둔화가 이익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LVMH는 루이비통과 디올 등 주요 브랜드의 제품과 매장 전략을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의 수요 회복 시점은 불확실하다.

세실 카바니스 LVMH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실적 발표 과정에서 "루이비통의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와 함께 "단기적인 매출 확대를 위한 대폭적인 가격 인하보다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