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검사 스타트업 테라노스 사기 사건으로 수감된 엘리자베스 홈스. 사진=테라노스
혈액검사 스타트업 테라노스 사기 사건으로 수감된 엘리자베스 홈스. 사진=테라노스
혈액검사 스타트업 테라노스 사기 사건으로 수감된 엘리자베스 홈스를 다룬 새 다큐멘터리가 연인 빌리 에번스의 역할을 집중 조명했다. 홈스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운영하고 대외 이미지를 관리하는 에번스를 통해 수감 중인 홈스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활동을 누가 결정하는지 묻는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작사 A24가 공개한 ‘유 캔 시 에브리싱(You Can See Everything)’은 홈스의 무죄 주장과 심리 상태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약 3시간의 영화에서 사실상 중심인물로 떠오른 것은 에번스다. 코미디언 겸 감독 네이선 필더와 랜스 오펜하임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홈스가 2023년 5월 텍사스주 브라이언의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 34일 동안 촬영됐다. 홈스와 에번스는 샌디에이고 카운티 임대주택의 별채에 필더를 머물게 하며 일상을 공개했다. 주방에서 홈스가 달걀을 젓자 에번스가 그릇을 가져가 더 빠르게 젓는 장면도 담겼다. WSJ는 이를 영화의 관심이 홈스에서 에번스로 옮겨가는 순간으로 짚었다.

홈스는 혈액검사 기술의 성능을 속여 투자금을 끌어모은 사기 혐의로 2022년 유죄 판결을 받고 같은 해 11월 징역 11년 넘는 형을 선고받았다. 홈스는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올해 34세인 에번스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출신이다. 2017년 가을 샌프란시스코의 한 행사에서 홈스를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형사재판이 시작되기 전 첫아들을 얻었고 2023년 둘째 아이를 낳았다. 에번스는 재판 내내 홈스와 함께 법정을 드나들었으며, 샌디에이고에서 호텔그룹을 소유한 그의 가족도 홈스를 지지하는 편지를 법원에 냈다.

영화에 따르면 에번스는 홈스의 법적 대리권을 갖고 홈스 명의의 엑스(X) 계정에 직접 글을 올렸다. 홈스의 인공지능(AI) 아바타도 만들었으나 실제 공개하지는 않았다. 촬영 당시 두 사람은 새로운 의료검사 회사 설립도 추진했다. 홈스는 수감 후에도 그림과 아이디어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회사 사정을 아는 관계자는 그가 실제 사업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필더가 에번스의 사업 협력자에게 테라노스에 관해 묻자 에번스가 질문을 중단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다큐멘터리 수익 배분 협상도 의문을 남겼다. 필더에 따르면 에번스는 제작 초기 홈스와 A24 경영진이 만난 자리에서 홈스가 방을 나간 뒤 영화 수익 일부를 받는 조건을 협상했고 A24는 이를 수용했다. 반면 홈스는 촬영 영상에서 영화로 돈을 벌지 않는다고 말했다. 필더는 홈스가 협상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다만 영화 마지막 자막에는 에번스가 결국 금전적 보상을 받을 권리를 포기했다고 명시됐다.

필더는 뉴욕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 촬영 막바지 에번스가 제작 과정을 통제하려 해 불편함을 느꼈고, 이후 소통도 사실상 끊겼다고 밝혔다. 오펜하임은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데 관심을 보인 홈스가 먼저 A24에 접촉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에번스가 홈스의 이름으로 하는 활동을 홈스 자신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홈스 명의의 X 계정은 뉴욕 첫 공개를 앞두고 운영 방식에 관한 글을 올렸다. 가까운 사람들이 계정을 관리해 왔으며 앞으로 홈스가 직접 쓴 글에는 이니셜인 ‘-EAH’를 붙이겠다는 내용이다. 이 서명이 없는 글은 계정 관리팀이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세성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