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기여한 실업계 교과서…"韓 산업화 첫 설계도"
“최우량 교과서를 최저 가격으로 최단 시일에 생산 공급하여 국민 교육 완수에 미성(微誠)을 다하고자 하는 바이다.”

1948년 9월 24일 설립된 ‘대한교과서주식회사’ 창립 발기문의 한 구절이다. 국내 최초의 교과서 전문 회사를 설립한 이는 독립운동가 우석(愚石) 김기오 선생(사진)이다. 1926년 울산 울주군에서 항일 운동에 필요한 유인물을 제작하기 위해 양산인쇄소를 설립한 그였다.

김 선생은 대한교과서를 설립하고 우리말 교과서를 편찬·발행하며 ‘교육입국’과 ‘출판보국’을 실천했다. “약소민족이라는 욕된 감투를 벗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참된 교육, 그것만이 오로지 민족의 살 길”이라던 염원을 교과서를 통해 실현한 것이다. 양산인쇄소와 대한교과서를 거쳐 미래엔으로 사명을 바꾼 이 회사는 이후 교과서 발행 부수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는 김 선생이 양산인쇄소를 창업한지 100주년을 맞는 해다.

◇‘실업계 교과서’ 위해 회사 설립

미래엔의 전신인 대한교과서는 1949년부터 실업계 교과서를 발행했다.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꾸기’는 국내 최초의 실업계 교과서다.  미래엔 제공
미래엔의 전신인 대한교과서는 1949년부터 실업계 교과서를 발행했다.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꾸기’는 국내 최초의 실업계 교과서다. 미래엔 제공
광복 이후 ‘우리말로 된 교과서’를 발행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교육 잔재를 씻어내고 주권 교육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당시 국어 교과서 못지 않게 필요했던 것이 실업계 교과서였다. 국어 교과서의 목적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 주권 교육과 문맹 퇴치에 있었다면, 실업계 교과서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실업계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종류는 많은데 발행 부수는 적어 수익은커녕 적자를 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실업계 교과서의 평균 발행부수는 책당 400부 정도에 불과했다.

그때 실업계 교과서를 발행하겠다고 나선 이가 울산 양산인쇄소에 이어 서울 효제동에서 인쇄소 겸 출판사 ‘문화당’을 운영하던 김 선생이었다. 교육 전문지 ‘조선 교육’을 발행하며 교과서 발행의 필요성과 현실적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던 터였다.

김 선생이 1400만원(자본금의 17.5%)을 직접 출자하고, 국민주 모금 등으로 나머지를 충당해 자본금 8000만원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주식 공모 사례였다. 그렇게 설립된 회사가 대한교과서다. 대한교과서의 창립 발기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국민 교육은 국가 백년의 대계(大計)요, 그중에서도 국가 장래의 중견적 중책을 부하(負荷)하고 있는 일반 인문 중학 급(及) 실업 교육의 중요성은 현 국내의 제반 정세로 보아 췌언(贅言)을 요(要)치 않는 바이다.”

◇기능인력 육성의 기반 돼

대한교과서가 발행한 최초의 실업계 교과서는 1949년의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꾸기’ 2종이다. 다음 교과서 생산을 준비하던 중 6·25 전쟁이 발발했다. 대한교과서는 전쟁통에도 교과서 발행을 멈추지 않았다. 김 선생과 직원들은 피란지인 부산에 모여 공장을 세우고 서울에서 인쇄기 등을 옮겨와 교과서를 생산했다. 그렇게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용 ‘전시생활’과 중등학교용 ‘전시부독본’이 만들어졌다. 부산 등지의 노천 교실에서 학생들은 책걸상도 없이 이 책으로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이어갔다.

1953년부터는 국어 교과서 발행권을 취득하며 교과서 전문 발행사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전쟁이 끝난 후 대한교과서의 교과서 발행 부수는 크게 늘어났다. 전쟁으로 중단됐던 초등학교 6년 의무교육이 195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다. 대한교과서의 교과서 발행 부수는 1953년에 91만 부, 1954년에 117만 부, 1955년에 92만 부였다가 1956년에는 160만 부로 늘었다.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을 본격화한 1970년대에는 산업 현장에 투입할 기능인력을 길러내는 실업계 교육의 수요가 늘어났다. 공업고 학생은 1973년 8만8000명에서 1980년 20만 명으로 증가했다. 산업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담은 실업계 교과서의 중요성도 커졌다. 당시 고등학교 공업 교과서는 독일이나 일본의 선진 기술을 한국 실정에 맞게 체계화한 자료였다. 교과서가 곧 ‘기술 매뉴얼’이었던 셈이다.

컴퓨터 보급이 본격화한 1990년대, 한국은 컴퓨터·정보 과목을 학교 교육과정에 도입하고 관련 교과서를 발행했다. 학교에서 정보교육을 받은 세대는 이후 국내 정보기술(IT)산업을 이끄는 인재로 성장했다.

김훈범 미래엔 교과서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었고, 실업계 교과서는 산업현장에 필요한 기초 인력을 양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며 “실업계 교과서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첫 설계도였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