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월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2026 뉴이천포럼’에서 ‘1인 1에이전트’ 도입을 제안하며 인공지능 전환(AX) 가속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K그룹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월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2026 뉴이천포럼’에서 ‘1인 1에이전트’ 도입을 제안하며 인공지능 전환(AX) 가속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K그룹 제공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공급망 재편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SK그룹이 ‘고강도 리밸런싱’과 ‘인공지능 전환(AX)’을 두 축으로 삼아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기존의 성공 방정식이 통하지 않는 경영 환경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본원 경쟁력을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동시에 AI라는 미래 핵심 축에 전사적 역량을 결집해 성장 기반을 새로 짜고 있다.

◇계열사 수 219→151개로

계열사 대폭 줄인 SK…리밸런싱과 AX로 새 성장방정식 쓴다
SK그룹은 지난 2년간 약 13조원 규모의 자산 효율화를 진행하며 계열사 수를 219개에서 151개로 줄였다. 비주력 사업을 정리해 확보한 재원은 AI·반도체·에너지 솔루션 등 미래 성장 동력에 재배치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X의 본질을 ‘운영개선(O/I)’으로 정의하고 “AX 기반의 O/I로 기본기와 실행력을 탄탄히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SK그룹은 대표 전략 플랫폼인 ‘이천포럼’을 ‘경영전략회의’와 통합한 ‘뉴 이천포럼’으로 재편해 짧아진 기술 변화 주기에 맞는 속도전 대응 체계도 갖췄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열린 뉴 이천포럼에서 ‘AX 중심 경영 대전환’을 선언하면서 “지금 전속력으로 전방위적 AX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맞이한 절호의 기회는 다시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
최태원 회장
전략의 핵심은 반도체에서 인프라, 서비스로 이어지는 AI 밸류체인이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주도권을 바탕으로 발열 문제를 해결한 차세대 기술 ‘iHBM’을 공개해 ‘2026 IEEE 어워즈’ 기업혁신상을 받았고, 지난 9월 미국 ‘FMS 2026’에서는 샌디스크와 함께 차세대 스토리지 기술 ‘HBF’의 첫 표준 규격을 선보였다. 이렇게 생산된 차세대 메모리는 SK텔레콤이 전국에 단계적으로 구축 중인 대규모 AI 데이터센터(AIDC) 인프라에 공급돼 국내외 AI 서비스 수요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된다.

이 인프라 위에서 SK텔레콤은 전 구성원이 업무 특화 AI를 직접 개발·활용하는 ‘1인 1 AI 에이전트’를 목표로 플랫폼을 구축했다. 보안 코딩 검증 자동화 AI로 연간 약 3000시간의 업무를 절감하는 등 서비스·현업 단으로 성과를 확산하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오픈AI의 챗GPT, 앤스로픽의 클로드 등 업무에 특화된 개인 맞춤형 AI 비서 서비스를 의미한다. SK AX는 지난 6월 ‘IMAGINE AX 2026’ 컨퍼런스를 열고 반도체·인프라·서비스로 이어진 전사 AI 전환 경험 ‘Being AX’를 공유했다.

여기에 국내외 유망 AI 기업 50개 사가 뭉친 ‘K-AI 얼라이언스’를 그룹 차원 플랫폼으로 확대 개편해 글로벌 협력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보텀라인(DBL)’ 경영을 대규모 투자로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채용 때 학력 제한 폐지

인재 선발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학력·스펙보다 문제의 본질을 파고드는 ‘생각하는 힘’을 중심으로 인재상을 재정립하고 지원 자격의 학력 제한을 폐지했다. 하반기 채용에서는 지원자가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직접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심층 면접을 도입하고, 전국 4개 거점 채용설명회로 약 4000명의 구직자를 만났다. 정부 주관 ‘K-뉴딜 아카데미’에도 참여해 비수도권 청년들에게 AI 반도체 직무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52년간 박사 1000여 명을 배출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을 통해 ‘KFAS 신진학자상’을 신설해 초기 연구자 육성에 나섰다.

연구개발(R&D) 혁신도 이어졌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송도에 3772억원을 투자한 ‘글로벌 R&PD 센터’를 구축했고, 게이츠재단이 지원하는 AI 기반 임상 의사결정 플랫폼 ‘ROTOR’ 프로젝트 주관기관으로도 선정됐다. SK바이오팜은 글로벌 인재를 영입해 아시아 신약 후보물질을 글로벌 신약으로 키우는 전략을 추진하고, SK에코플랜트는 오픈이노베이션 공모전을 7년째 운영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숫자로도 증명된다. SK그룹은 지난해 총 32조2000억원의 사회적 가치(SV)를 창출했다고 밝혔다. 측정을 시작한 2018년(16조원)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누적 창출액은 155조원에 달한다. 고용·배당·납세 등 경제간접 기여성과가 전년 대비 6조2000억원 늘어난 31조8000억원을 기록했고, 반도체 생산 증가에 따른 환경성과의 부정적 영향(-3조1000억원)은 고효율 장비와 재생에너지 확대로 억제했다.

SK그룹의 행보는 단순한 위기 대응을 넘어,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업 모델과 조직 운영 방식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려는 장기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SK그룹 관계자는 “경영진의 전략적 비전과 전사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실행 의지가 한데 모여 그룹의 AX 방향성을 정립했다”며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AI 대전환을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