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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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마이크를 탑재한 인공지능(AI) 안경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각국의 규제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공원과 학교, 병원 등에서 AI 안경 사용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대형 안경 유통업체가 메타 스마트 글래스 판매를 중단하는 등 사생활 침해 우려가 제품 판매와 사용 제한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공원·학교·병원까지 사용금지 검토

10일 외신 등에 따르면 노르웨이 정부는 지난 5일 일부 공공장소에서 AI 안경 사용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상에는 공원과 해변, 박물관, 쇼핑센터, 놀이공원과 스포츠·음악·문화행사 등이 검토되고 있다. 학교와 유치원, 놀이터 등 어린이가 많이 머무는 곳과 병원, 의원, 수영장, 탈의실·샤워시설이 있는 헬스장 등 사생활 보호 필요성이 큰 장소도 포함될 수 있다.

노르웨이 정부가 규제에 나선 것은 AI 안경을 쓴 사람이 주변 사람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고 음성을 녹음해도 상대방이 이를 알아채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토르게이르 미카엘센 노르웨이 디지털화·공공행정부 장관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촬영·녹음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한시적 금지 기간에 장기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별도의 전문가그룹도 구성해 신체 착용형 기술 전반의 규제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모든 AI 안경 사용을 막는 것은 아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취약계층의 보조기기 활용 등 사회적 편익이 큰 경우에는 예외를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카메라·마이크가 탑재된 안경만 규제할지, AI 기능이 있는 제품이나 다른 웨어러블 기기까지 포함할지도 법안을 마련하면서 구체화할 예정이다.

판매 중단까지…유럽서 규제 확산

레이밴 메타 형태의 AI 안경 촬영 표시등을 연출한 이미지. 실제 제품 촬영 영상은 아니다. / AI 생성
레이밴 메타 형태의 AI 안경 촬영 표시등을 연출한 이미지. 실제 제품 촬영 영상은 아니다. / AI 생성
AI 안경을 둘러싼 논란은 유럽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네덜란드 대형 안경 유통업체 한스 안데르스는 최근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메타의 '레이밴 메타' 판매를 중단했다. 네덜란드 개인정보보호 당국과 소비자단체가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안경으로 사람을 동의 없이 촬영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 데 따른 조치다.

네덜란드 개인정보 감독당국은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 담긴 영상을 당사자 동의 없이 공유·공개할 경우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위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지 소비자단체 콘수멘텐본드는 메타가 제품을 관련 법규에 맞게 개선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메타는 촬영할 때 안경 전면의 표시등이 깜빡이고 이를 가리거나 훼손하면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설명해왔다.

영국에서도 민간 시설을 중심으로 사용 제한이 늘고 있다. 영국영화관협회에 따르면 현지 영화관 상당수는 사생활 침해와 영화 불법 촬영 가능성을 이유로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안경 착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호주 정부도 정부 청사에서 카메라가 탑재된 스마트 안경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탈의실이나 진료실 등에서 스마트 안경으로 사람을 몰래 촬영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웨어러블 녹화기기에 촬영 표시장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개빈 뉴섬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기존 법으로도 불법 촬영을 처벌할 수 있고 규제 대상인 웨어러블 기기의 정의가 지나치게 넓다는 이유에서다.

AI 안경 420만대…국내도 보호 방안 논의

규제 논의는 AI 안경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확산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AI 글래스 출하량은 420만대로 전년 동기보다 127% 늘었다. 메타는 이 가운데 340만대를 출하해 81.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레이밴 메타와 오클리 메타가 지난 5월 공식 출시됐다. 지난달에는 메타의 자체 브랜드와 레이밴 메타 신제품 등 판매 제품군도 늘었다. 일반 안경과 외관 차이가 크지 않으면서 사진·영상 촬영과 통화, 음악 감상, AI 질의 기능 등을 사용할 수 있어 촬영 사실을 주변 사람이 어떻게 인식하도록 할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관련 업체들과 사생활 보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송경희 개인정보위 위원장은 지난달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메타 등 스마트글라스 업체들과 제품 출시 전부터 개인정보 보호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과 달리 상대방이 촬영 중임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을 제조사에 강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송 위원장은 AI 등 신기술에 대해 당장 규제를 적용하기보다 기업이 준수해야 할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먼저 제시하겠다는 방향도 밝혔다. 스마트글라스는 제품 출시 단계에서 보호 방안을 반영하도록 협의하는 사례다. 시장의 반응과 기술 변화를 살핀 뒤 필요한 경우 입법으로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법제 전문가들도 촬영 사실을 알리는 표시등만으로는 사생활 침해를 막기 어렵다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법무법인 세종은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 "과연 불빛이나 소리만으로 정보주체가 촬영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