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민들이 비 오는 시부야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도쿄 시민들이 비 오는 시부야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일본 도쿄에서 관측 사상 가장 긴 35일째 비가 이어지는 등 기록적인 일조량 부족이 계속되고 있다. 관광과 숙박 등 서비스 소비가 위축된 데 이어 채소 가격까지 뛰고 쌀 품질 저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까지 늘면서 장기 악천후의 충격이 일본 경제와 생활 전반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2일 일본 기상청 등에 따르면 동일본 태평양측의 9월 일조시간은 평년의 46%에 그쳤다. 1946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종전 최저였던 1988년의 54%도 크게 밑돌았다. 같은 기간 강수량은 평년의 2.36배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도쿄의 상황은 더 극단적이다. NHK에 따르면 도쿄 도심에서 비가 관측된 날은 지난달 30일까지 35일 연속을 기록했다. 1886년 관측을 시작한 이후 최장 기록이다. 혼슈 부근에 정체한 가을장마전선에 태풍 25호까지 겹치면서 장기간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씨가 이어졌다.

악천후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관광·서비스업이다. 지바현의 대형 리조트 ‘리솔노모리’는 태풍 25호로 주변 도로에서 산사태와 쓰러진 나무가 발생하고 정전·통신장애까지 겹쳐 일부 시설이 열흘 가까이 문을 닫았다. 8월 집중호우 때도 1주일 이상 임시 휴업했다.

개인소비도 둔화하고 있다. 나우캐스트와 JCB가 신용카드 결제액을 토대로 산출하는 ‘JCB 소비 NOW’에 따르면 8월 소비액은 전년 동월 대비 2.4% 증가해 7월의 3.1%보다 증가세가 둔화했다. 서비스 소비 증가율은 같은 기간 2.9%에서 0.6%로 급락했고, 호텔·료칸 등 숙박 소비는 2.8% 감소했다.

9월에도 부진이 이어졌다. 조사회사 마크로밀에 따르면 주당 개인소비액은 골든위크가 있었던 5월 2만400엔에서 9월 1만6000엔대로 떨어졌다. 11년 만의 5연휴였던 실버위크에도 1만9117엔에 그쳤다. 장기간 이어진 비가 외출을 막은 것으로 분석된다.

비와 일조량 부족은 밥상물가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10월 배추·양상추·피망 가격이 최근 5년간 같은 달 평균보다 30% 이상 비싸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산지에서 장마와 일조량 부족으로 작물 생육이 부진해진 영향이다. 시금치·브로콜리·오이·가지·토마토도 평년보다 10~30% 높은 가격이 예상된다.

본격적인 수확기를 맞은 쌀도 비상이다. 2026년산 1등미 비율은 8월 말까지 예년 수준을 유지했지만 장기간의 비로 착색 피해와 미숙립 발생이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2·3등급 쌀 비중이 늘 경우 쌀값에도 추가적인 하락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사람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NHK는 최근 병원을 찾는 사람 가운데 비가 오는 날 두통과 집중력 저하, 메스꺼움 등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의사들은 기압과 기온 변화가 자율신경에 영향을 줘 두통이나 피로감을 유발하는 이른바 ‘기상병’ 환자가 증가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기상병은 공식적인 병명은 아니다.

반대로 악천후가 특수가 된 업종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우산 공유서비스 ‘아이카사’의 8~9월 이용 횟수는 전년 동월 대비 약 2.5배로 늘었다. 코인세탁소 업체 WASH하우스의 도쿄 점포 9월 매출도 46% 증가했다. 비가 이어지며 건조기 이용이 늘어난 영향이다.

일본에서는 날씨가 경제 성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니파이낸셜그룹의 미야지마 다카유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성장률 수준이 낮아져 기상 악화 충격을 흡수할 경제의 힘도 약해졌다”며 “과거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쉬워졌다”고 말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