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 30일 서울 청진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ETRI 제공
박세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 30일 서울 청진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ETRI 제공
“모든 분야를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가이드독처럼 ETRI가 잘할 수 있고 실제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집중적으로 키우겠습니다.”

박세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29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AI와 로봇, 통신 등 연구 분야를 백화점식으로 가져가기보다 ETRI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를 골라 인력과 연구비를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대표 사례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가이드독(안내견) 로봇’이다. ETRI는 사람의 명령을 이해하고 주변 환경을 인식해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로봇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관련 기술로 국제대회에서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 원장은 “올해 안내견 수준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를 넘어서면 1~2년 안에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ETRI는 앞으로 △AI △피지컬 AI △입체통신 △공간결합 △AI디지털전환(ADX)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역량을 재편한다. 기존에 기술 자체를 기준으로 역할과 책임(R&R)을 정의했다면 앞으로는 사업화와 지역 활성화, 사회문제 해결 등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담겠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포스트 연구과제중심제도(PBS) 체제에서는 국가가 출연연에 기대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민간 경쟁력이 충분히 올라온 분야는 축소한다. 박 원장은 자동차 자율주행을 예로 들며 “로봇의 자율운행은 계속하겠지만 자동차 자율주행은 이제 우리가 내려놓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 연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 미만인 연구 가운데 미래지향성이 떨어지는 분야도 줄일 방침이다.

AI 연구를 위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인프라도 확대한다. ETRI는 현재 AI 컴퓨팅센터 1·2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B시리즈 기준으로 환산하면 300~400장 수준의 GPU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박 원장은 “3센터 구축을 준비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확보한 재원도 200억원 규모”라며 “정부 지원 사업에도 참여하고 지역 기관들과 GPU를 함께 확보해 공유하는 체계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ETRI는 PBS 폐지를 연구 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현재 22% 수준인 임무형 연구 비중을 2030년 90% 수준으로 확대한다. 박 원장은 “지금 연구원들이 전체 근무시간 가운데 실제 연구에 쓰는 시간은 37% 정도”라며 “나머지는 과제 제안서와 보고서, 각종 행정업무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어떤 과제를 따올 것인가’보다 ‘국가가 ETRI에 맡긴 임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행정과 대외활동을 줄여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