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시에 증조할아버지 묘소 등 산소 네 기를 둔 최희락 씨는 올해 설부터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겼다. 증손자로서 지난 40여 년간 산소를 찾아 풀을 베고 주변을 관리했지만, 최근 해외에 머물게 되면서 직접 돌보기가 어려워졌다. 서울에 사는 자녀들에게 벌초하러 내려오라고 하기도 부담스러워 결국 지역 생활 플랫폼 당근에서 대행자를 구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남에게 조상 묘를 맡긴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직접 했을 때보다 깔끔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종갓집도 100년 만에 '벌초 대행'
추석을 앞두고 가족이 모여 하던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기는 일이 익숙한 풍경이 됐다. 성묘, 벌초를 생략하거나 집안 모임을 줄이는 등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23일 산림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141개 회원조합의 지난해 8~10월 벌초 대행 실적은 6만1903기로 2021년 5만6274기보다 약 10%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약 47억원에서 66억원으로 늘었다. 묘지 한 기당 평균 수수료는 10만원 안팎이다. 중앙회는 올해도 증가율이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족이 함께 벌초해 온 집안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충청 지역에서 증조부 때부터 100년 넘게 추석 벌초를 해온 종갓집 종손 권모씨(64)도 올해부터는 집안 장정 20명가량이 모여 벌초하던 방식을 간소화하기로 했다.

권씨는 “결혼을 앞둔 예비 며느리도 벌초 때문에 집에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방식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민간 대행 서비스를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 당근 등 생활 플랫폼에는 추석을 앞두고 벌초 아르바이트를 구하거나 작업을 의뢰하는 게시물이 잇따르고 있다. 이용 후기가 30여 개 달린 대구 지역의 한 벌초 대행자에게 작업 가능 일정을 문의하자 “3주 뒤에 최소 산소 2기 이상부터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명절에 묘소를 찾으려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 4~7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추석 명절 모임·일정 계획’ 조사에서 이번 추석에 ‘성묘·벌초를 하거나 납골당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5%였다. 지난해 추석(50%) 때보다 5%포인트 낮아졌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절 모임이 줄어드는 것은 가족 의례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규범이 약해진 데다 개인의 시간을 중시하는 경향, 세대 간 갈등을 피하려는 태도가 맞물린 결과”라고 말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