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8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프레더릭스버그에서 데이터센터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REUTERS·연합뉴스
지난 7월18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프레더릭스버그에서 데이터센터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REUTERS·연합뉴스
인공지능(AI) 산업 기반인 데이터센터를 향한 규제가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는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연결을 막은 데 이어 허가 발급도 중단시켰다. 유럽연합(EU)은 에너지와 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 공개하도록 하는 규제안을 내놨다. 전기요금·환경 부담에 따른 우려가 건설 허가, 자원 사용 효율을 겨냥한 규제로 이어지고 있다.

곳곳서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허가 중단" 명령도

23일 업계 등에 따르면 전 세계 각국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제한하는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텍사스주 환경품질위원회에 데이터센터 신규 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전력망 연결을 추진하는 시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감사가 끝날 때까지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지시로 개발업체에 대한 주정부의 모든 허가 발급이 사실상 동결됐다고 전했다.

애벗 주지사는 지난달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연결을 중단하고 감사를 명령했다. 당시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소비시설의 연결 신청 규모는 470기가와트(GW)를 넘어 텍사스주 최대 전력 수요 대비 다섯 배를 웃돌았다.

전력망 운영기관은 전력 사용량·세제 혜택·물 소비를 감사 중이다. 애벗 주지사는 "텍사스 주민이 우선이어야 한다"면서 데이터센터에 자체 비용 부담과 전력망·물 보호 등을 요구했다. 풍부한 전력·땅과 친기업적 환경으로 투자를 모으던 지역이 주민의 전기요금·환경 우려를 달래기 위해 돌연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21일(현지시간) 데이터센터의 에너지·물 사용 효율 등급을 공개하는 규제안을 제안했다. 물 사용과 지역 물 부족 관계, 폐열 재활용 등 지역 에너지 체계 기여 가능성도 공개한다. 사용량 상한이나 총전력 사용량 공개 의무 없이 효율 비교로 개선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회원국과 유럽의회가 두 달 내 반대하지 않으면 발효된다.

EU는 미국 빅테크 의존도를 낮추고 AI 산업을 키우기 위해 7년간 데이터센터 용량을 세 배로 늘릴 계획이다. 지난 6월 EU 보고서를 보면 역내 전력 소비 중 약 2.5%가 데이터센터 몫이다. 용량으로는 지난해 12GW에서 2030년 28GW로 늘어날 전망인 만큼 전력망·수자원 보호가 과제로 꼽힌다.

이해관계 충돌도 격화하고 있다. 미국 건설노조·업계 단체는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면서 데이터센터 반대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를 경고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주민의 전기요금·환경 우려와 일자리 문제가 충돌한 구도다.

미국의 신규 데이터센터 금지·제한 조치는 지난 6월 말 300건에서 7월 500건 이상으로 늘었다. 버지니아주는 데이터센터 전용 송전망 비용을 사업자에게 전액 부담시켰다. 매사추세츠주·네브래스카주는 개발업체 세금 혜택을 중단했다.

일본 지바현 인자이시 주민들은 52미터 높이 데이터센터 건설 반대 운동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소음·열기·비상발전용 연료 저장시설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데이터센터를 '사무실'로 분류해 주거지 내 건설 제한이 느슨한 틈을 파고들었다. 호주 빅토리아주는 주거지, 학교·보육 시설 인근, 인프라 지원이 불가능한 농촌의 데이터센터 건설을 금지하고 냉각엔 재활용수나 비음용수를 쓰도록 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제퍼슨시티에 위치한 미주리주 의사당 2층 난간에 데이터센터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제퍼슨시티에 위치한 미주리주 의사당 2층 난간에 데이터센터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데이터센터용 AI 칩, 내년 기대치 다를 수도"

업계에선 AI 서버 확장이 가속화하는 데 미국 전력망 구축이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7일(현지시간) "중간선거를 계기로 데이터센터 이슈가 초당적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여러 주가 규제와 전력망 연계 심사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미국의 정책 환경이 건설 속토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데이터센터 건설이 AI 서버의 강력한 성장세에 속도를 맞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봤다.

데이터센터 규제가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경고음은 일찌감치 울렸다. 데이터센터용 AI 칩이 반도체 시장 성장세를 주도하겠지만 내년·내후년엔 기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는 지난 2월 "소비자 전기요금 상승 위험 때문에 데이터센터 허가를 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반도체 호황의 걸림돌로 꼽았다. 투자수익성 악화에 따른 프로젝트 취소·연기는 칩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데 여러 위험 요인이 현실화할 경우 특정 패키징·메모리·전력·통신 반도체 업체도 타격이 불가피하단 분석이다. 데이터센터 규제가 미칠 영향만을 분석한 결과는 아니지만 반도체 업계 위험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는 데 시선이 쏠린다.

자히르 알리 미국 센트럴프롤리다대학교 경영대 교수는 지난달 EE타임스 기고를 통해 "반도체 업계는 국가안보 논리가 자신들을 신뢰 부족 문제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며 "AI 인프라 산업 전반이 행동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반도체 산업, 어쩌면 딥테크 전체가 그 문제를 떠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은 반도체 업계를 포함한 관련 산업에 미칠 영향이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관측이다.

반도체·AI 전문 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지자체 단위 규제 구역 내에 포함된 약 20GW 용량 중 실제 일정이 지연되고 있는 규모는 1525메가와트(MW)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오하이오주 AWS 캠퍼스, 펜실베이니아주 전력 부지 개발사 캠퍼스, 콜로라도주의 한 부지 등 총 3개 프로젝트에서 지연된 몫이다. 다만 이 수치는 텍사스주 허가 발급 중단 이전에 분석된 결과다.

이 업체는 "인허가 유예가 데이터센터 건설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규모가 크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