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강일동 '강일리버파크' 전경 사진=호갱노노 캡쳐
서울 강동구 강일동 '강일리버파크' 전경 사진=호갱노노 캡쳐
서울 강동구 강일동 장기전세주택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계약 만료를 앞둔 입주민은 보증금을 올려 계속 살거나 분양받을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최장 20년이라는 계약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논란의 중심에는 강일리버파크와 고덕리엔파크가 있습니다. 두 단지군에서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된 물량은 3004가구입니다. 강일리버파크가 1390가구입니다. 고덕리엔파크는 1614가구입니다.

장기전세주택은 서울시가 2007년 '시프트(SHift)'라는 이름으로 도입했습니다. 무주택 서울시민이 주변 전세 시세의 40~80% 수준인 보증금으로 최장 20년간 거주하는 공공임대주택입니다. 처음부터 분양전환을 전제로 공급된 주택은 아닙니다.

"3억원 들고 어디로 갑니까"…입주민이 꺼낸 호소문

논란은 강일동 일대 장기전세 입주민이 배포한 안내문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입주민 측은 "보증금 23%로 20년 안정 거주를 약속한 서울시의 약속을 믿고 강일동에 터를 잡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2027년부터 만기가 도래하면 시세 10억원 집에 전세 세대는 보증금 3억원만 받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내문에 적힌 23%는 입주민 측이 자신들의 계약 조건을 설명하며 제시한 수치입니다.

요구 사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무주택 상태를 유지한 입주민에게 시세의 80% 수준으로 보증금을 올려 재계약할 기회를 달라는 요구입니다. 20년을 거주한 입주민에게 감정가격을 기준으로 분양전환할 기회도 요구했습니다.

입주민이 호소하는 문제는 20년 사이 벌어진 주거비 격차입니다.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한 뒤 서울 아파트 가격과 전셋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현재 보증금을 돌려받아도 같은 생활권에서 비슷한 면적의 전셋집을 찾기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장기전세주택의 평균 보증금은 2억9300만원입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 7억1178만원의 약 41%입니다. 장기전세에 거주하며 절감한 주거비가 적지 않지만 계약이 끝난 뒤 민간 임대시장으로 이동할 때 필요한 자금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20년 동안 형성된 생활 기반도 문제로 꼽힙니다. 직장과 학교, 병원, 이웃 관계가 강일동을 중심으로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입주민에게 계약 종료는 집뿐만 아니라 생활권까지 옮겨야 하는 문제입니다.

"최장 20년은 계약"…서울시, 연장 요구에 선 그어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기전세는 최초 모집부터 최장 거주 기간을 20년으로 정했습니다. 계약 당시 분양전환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기간이 끝난 주택은 새로운 무주택 가구에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기존 입주민에게 재계약이나 우선 분양권을 주면 장기전세 입주를 기다리는 다른 무주택 가구의 기회가 줄어듭니다. 분양전환은 거주 기간을 늘리는 것과도 성격이 다릅니다. 공공이 보유한 주택의 소유권을 특정 입주민에게 우선 넘기는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8일 열린 '장기전세주택, 서울의 주거사다리 희망토크'에서 기존 입주민의 계약 연장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오 시장은 "(거주 기간 만기 이후에도) 더 살고 싶다는 분들이 계셔서 시끌시끌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는 비양심적인 억지"라며 "서울시는 (만기 후 퇴거에) 예외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장기전세주택 입주를 기다리는 분이 많고 이들도 서울 시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3.9%가 20년 거주 기간이 끝나면 퇴거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했습니다. 찬성 이유로는 '계약대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응답이 37.2%였습니다. '공공임대의 본래 목적이 영구 거주가 아니라 자립 지원에 있다'는 답변도 37.1%였습니다.

현행 최장 거주 기간에 대해서는 53.2%가 적절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응답은 25.7%였습니다. 연장해야 한다는 답변은 18.5%에 그쳤습니다.

2031년까지 9300가구 만기…다음 무주택자에게 재공급

서울 장기전세주택은 2027년부터 처음으로 20년 만기를 맞습니다. 서울시는 2027년 310가구를 시작으로 2028년 682가구를 회수할 예정입니다. 2029년에는 1747가구가 계약 종료 시점에 도달합니다. 2030년에는 2452가구, 2031년에는 4170가구가 만기를 맞습니다.

5년 동안 반환되는 물량은 약 9300가구입니다. 서울시는 이들 주택을 새로운 무주택 가구를 위한 장기전세주택이나 신혼부부용 '미리 내 집' 등으로 다시 공급할 계획입니다.

서울시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고령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입주민에게는 다른 공공임대주택을 안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매입임대주택이나 비아파트 공공주택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오 시장은 이러한 지원도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가 2007년 이후 공급한 장기전세주택은 3만8296가구입니다. 계약 만료 전에 퇴거한 가구는 1만5529가구입니다. 이 가운데 82.4%는 주택 매수나 민간 전세 이동 등을 이유로 자발적으로 퇴거했습니다. 평균 거주 기간은 7년6개월이었습니다.

계약 원칙만 보면 20년 뒤 퇴거는 예고된 절차입니다. 반면 장기간 정책을 믿고 무주택 상태를 유지한 입주민에게 민간 임대시장으로의 이동은 큰 부담입니다. 기존 입주민의 주거 안정을 우선하면 다음 무주택 가구의 입주 기회가 줄어듭니다. 강일동에서 불붙은 갈등은 약 9300가구가 차례로 만기를 맞는 2031년까지 서울 곳곳에서 반복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장기전세주택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계약 기간이 정해진 공공임대 상품"이라며 "기존 입주민에게 일괄적으로 거주를 연장해주거나 분양 전환 기회를 주면 또 다른 대상자가 기회를 잃는 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만 고령자 등의 경우에 한해서는 퇴거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은 마련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