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만 머물던 한국 인공지능(AI) 모델이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에 처음 데뷔한 국내 모델이 꾸준한 인기 속에 사용량 3위에 오르자 기류가 달라졌다. 기능 제한이 걸린 미국산과 보안 이슈가 따라붙는 중국산 사이에서 틈새 공략에 성공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데뷔에 세계 3위
국내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의 최신 모델 ‘솔라 프로4’가 글로벌 모델 플랫폼 ‘오픈라우터’에서 폐쇄 모델 기준 주간 토큰 사용량에서 21일 6위에 올랐다. 한 주 전엔 3위까지 오르기도 하면서 상위권을 계속 점하고 있다. 엔트로픽 ‘클로드 소넷4.6’, 구글 ‘제미나이 3.1 플래시 라이트’ 등 빅테크 가성비 모델 등을 사용량에서 누른 결과로, 국내 모델 중 처음으로 오픈라우터에 뛰어든 지 한 달 만에 거둔 성과다. 오픈라우터는 각종 AI 모델을 쓰기 위해 전 세계 개발자가 모이는 세계 최대 플랫폼이다.
인기 요인으로 사용자 요청을 여러 단계에 걸쳐 수행하는 에이전틱 AI에 최적화됐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 솔라 프로4 모델 사용량 중 90% 이상이 오픈소스 에이전트 시스템인 ‘헤르메스에이전트’에서 발생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도 한몫한다.
AI 스타트업 모티프테크놀로지스의 최신 모델 ‘모티프3’에 대한 해외 관심도 뜨겁다. AI 모델 평가사 아티피셜애널리시스인텔리전스인덱스(AAII)에서 47점을 받아 성능 면에서 국내 최고를 기록하고도, 지난달 말 정부의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2차 평가에서 탈락하자 해외에서 주목도가 더 높아졌다. 미국 AI 리서치 회사 세미애널리시스가 최근 “모티프3는 미국 최고 오픈소스 모델보다 앞서 있다”며 “한국 정부가 이 모델을 탈락시킨 것은 충격적”이라고 평할 정도다.
◇“빅테크와 경쟁 시작”
폐쇄 모델 상위 20위 기업 중 미·중을 제외한 국적은 솔라 프로4가 유일하다. 한국은 독자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이 8곳으로 세계 3위 규모지만, 연구개발(R&D)에 무게중심을 뒀다. 모델을 판매하려면 인력과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다. AI업계 관계자는 “그간 벤치마크 경쟁만 펼치던 한국 모델이 미국·중국과의 정면 대결에서 성과를 냈다는 점은 의미 있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한국 기업도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LG AI연구원은 독파모 3차 평가를 전후로 오픈라우터 등에 모델을 올려 판매에 나서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모티프도 모티프3 성능을 강화해 내년 초 오픈라우터에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임정환 모티프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발표한 모티프3를 보완한다면 글로벌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본다”고 자신했다.
미국과 중국의 엇갈린 전략 속 한국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점도 긍정적이다. 미국 기업은 점차 최상위 모델의 일부 기능에 제한을 걸고, 중국 모델은 오픈웨이트지만 보안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가운데 해외 기업은 제3의 대안으로 한국 모델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최근 모티프에 유럽, 중동 기업들이 모델을 실증해 보겠다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고 일부는 실제 사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