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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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이창동 감독)

누군가는 '계급통'이 온다고 했다. '기생충'보다 더 뼈아프게 파고드는 현실의 바닥에서 노동과 자본, 욕망과 위선, 지독한 연민이 남긴 흉터처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새기는 영화 '가능한 사랑'의 이야기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의 영예를 안고 8년 만에 돌아온 거장 이창동의 카메라는 다시 한번 가장 아프고 묵직한 질문을 향한다. '가능한 사랑'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현장에는 메가폰을 잡은 이창동 감독과 주역 설경구·조인성·조여정이 자리했고, 미국 일정 중인 전도연은 화상으로 참여했다.

개막 전부터 전 세계 유수 영화제 러브콜과 수상 낭보로 기대를 모아온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을 거쳐온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 점에서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영화 '가능한 사랑' /사진=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사진=넷플릭스
◆ "상보다 관객 반응이 값졌다"… 다층적 시선으로 빚어낸 이창동의 사유

'가능한 사랑'은 개봉에 앞서 한국 영화계에 낭보를 전한 바 있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 수상 외에도 이창동 감독이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트리뷰트 어워즈 TIFF 에버트 감독상, 한국인 최초로 제49회 밀밸리영화제 어터상을 안았으며, 뉴욕, 산세바스티안, 취리히, 밴쿠버, BFI 런던 등 전 세계 영화제 러브콜을 이어가고 있다. 나아가 제99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이 감독은 "공식적인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기쁘고 영광스럽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러나 상은 결과물일 뿐"이라며 "이 영화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 관객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가 베니스 영화제였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 줄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또한 진심이다"라고 말했다.

베니스영화제 당시 현장의 반응은 뜨거웠다고. 그는 "다행히 이 영화가 쉽고, 자극적인 영화가 아님에도 관객이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과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잘 느껴주고 반응해준 것 같았다. 그게 다행이었고 기뻤다"고 털어놨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 직후 설경구의 눈물은 화제가 됐다. 그는 "조인성도 같이 울었다"며 쑥쓰러워 했다. 그러면서 "기술 시사 때 보고 베니스영화제 때 몰입해서 보게 됐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동하더라. 관객이 박수를 쳐주니까 고흥에서 촬영했던 그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더라"고 회상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 /사진=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사진=넷플릭스
귀국 후 연락을 너무 많이 받아 창피해 혼났다는 농담과 함께, "다행인 것은 조인성이 같이 울어줘서 위로가 됐다. 전도연은 내가 너무 울어서 울 기회가 없었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운 것 같다"고 웃었다.

조인성이 '가능한 사랑' 팀을 대표해 외신 기자들의 사인 공세를 받았던 해프닝에 대한 후일담도 뜨거웠다. 그는 "베니스에서 공식 기자회견이 끝나고 현장에 참석한 기자들이 사인을 받아 깜짝 놀라고 당황하기도 했다. 공식 기자회견인줄 알았는데 우르르 다가오길래 내가 뭘 잘 못 한 줄 알았다. 반갑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했다. 한국 영화의 위상을 베니스에서도 느껴준 것 같다. 반갑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혹시 오늘도 사인을 받으러 나오실 계획이면 미리 말을 해달라. 그럼 당황은 하지 않겠다"고 너스레를 떨어 다시 한번 장내에 큰 웃음을 선사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 /사진=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사진=넷플릭스
과거 촬영장에서 'OK' 사인을 아끼기로 유명했던 이창동 감독은 이번 현장에서의 변화를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 감독은 "현장에서 'OK' 사인을 안 하는 걸 내 영화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OK'가 어디 있나 싶었기 때문"이라며 "답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배우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밀양' 때까지 'OK'를 안 했다. 배우들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전환점은 '시'였다. 연로하고 신체적 부담이 컸던 중견배우 윤정희를 위해 시원하게 'OK'를 주어야 했고, 당시 응원 온 다른 배우들이 깜짝 놀라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는 "해보니 고집할 문제가 아니구나 싶어 이제 시원하게 사인을 준다"며 "전도연, 설경구와 오랜만에 작업하며 긴장감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굉장히 편했고 나도 마음을 많이 놨고 공기가 달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 배우가 서로 좋은 기운을 줬고 팀워크를 잘 만든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과거 '밀양' 촬영 당시를 떠올린 전도연은 "그때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어서 역할에 대한 의심도 컸다. 당시에는 감독이라는 사람은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그 답을 주지 않는다고 느껴서 작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작업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감독님이 오케이를 정말 시원하게 해주셨다"며 "정말 편했고 힐링이 될 정도의 현장이어서 놀랐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 '가능한 사랑' /사진=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사진=넷플릭스
10여 년 전 대기업 정리해고와 진압 사건에서 출발한 '가능한 사랑'은 노동이 특정 일터의 한계를 넘어 일상 전반을 관통하는 현실로 확장된 궤적을 영화적 사유와 포개었다. 자본과 노동의 거대한 억압이 삶을 규정하려는 장벽 속에서도, 인간이 끝내 향해야 할 자유의 의지―사랑의 변주이자 욕망의 실체를 좇는다.

연출 의도에 대해 이 감독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닥친 문제를 단순하고 쉽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여러 층위에서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세계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데 그걸 관객과 같이 말하고 싶었다는 것. 해고 노동자, 계급 갈등, 영화 만드는 사람의 윤리나 태도, 사람과의 관계로 보이는 이런 층위를 관객과 함께 느끼고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는 것이 이 감독의 설명이다.

특히 10여 년 전 대량 해고, 파업, 강제진압 사건이 터졌을 때 느꼈던 충격과 고심의 과정도 고백했다. 그는 "정말 큰 충격이어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가 포기했다. 내가 얼마나 그들에게 가까운지, 정직한지 확신이 없어서 접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노동의 문제가 해고와 파업 문제가 아닌 노동의 근본적인 시각 자체가 바뀌었고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들어오면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회상했다. 타인의 삶을 조명하는 감독으로서 내가 얼마나 본질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가 평생의 질문이고 지금도 쉽게 답을 찾지 못하는 고민이라는 전언이다.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은 오는 9월 23일 국내 일부 극장 개봉을 거쳐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과 만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