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초저금리 장기화로 가계 예금이 자산관리상품과 펀드 등으로 이동하자 일부 민영은행이 장기예금 금리를 올리며 자금 이탈 방어에 나섰다. 게티이미지
중국의 초저금리 장기화로 가계 예금이 자산관리상품과 펀드 등으로 이동하자 일부 민영은행이 장기예금 금리를 올리며 자금 이탈 방어에 나섰다. 게티이미지
중국 은행권에서 보기 드문 금리 역주행이 나타나고 있다. 대형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낮추는 상황에서 일부 민영은행이 오히려 중장기 예금금리를 올리고 한동안 판매를 중단했던 5년 만기 상품까지 다시 내놓고 있다.

초저금리 장기화로 예금에서 자산관리상품과 펀드 등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가 빨라지자 고객과 장기자금을 붙잡기 위한 방어전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中 금융시장 머니무브 경고음

제일재경 등 중국 경제매체를 종합해보면 중국 최대 민영은행인 위뱅크는 최근 3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연 1.6%에서 1.75%로 0.15%포인트 올렸다. 지난해 4월 5년·3년·2년 만기 금리를 일제히 연 2%에서 1.6%로 내린 이후 1년5개월 만의 방향 전환이다. 현재 3년물 금리가 5년물 연 1.6%보다도 높다.

알리바바 계열 마이뱅크는 5년 만기 예금에 연 1.8%를 제시했다. 쑤상은행도 5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연 1.8%로 올렸고 20만위안(약 4130만원) 이상을 맡기는 5년 만기 거액예금증서 금리는 연 1.85%다. 지난 6월 중관춘은행과 싼샹은행 등 민영은행들이 2~5년 만기 상품을 잇따라 판매 중단한 것과 대조적이다.

은행들이 다시 장기예금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배경에는 대규모 예금 만기가 있다. 중국에서는 2022년 말 은행 자산관리상품의 가격이 크게 흔들린 뒤 안전자산을 찾는 가계자금이 고금리 정기예금으로 몰렸다. 당시 가입했던 2~3년 만기 상품들이 올해 집중적으로 돌아오고 있다.

중국 금융업계에서는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2년 이상 고금리 예금이 약 64조위안(약 1경28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과거 연 2~3%대 금리로 가입한 자금이다.

현재 같은 만기의 금리가 대부분 연 1%대로 떨어지면서 만기 자금이 다시 예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자산관리상품과 보험, 펀드 등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에서는 만기 자금의 10~20%만 금융투자상품으로 이동해도 6조~13조위안 규모의 신규 자금이 자산관리 시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실제 자금 흐름에서도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 가계예금 증가액은 7조5800억위안으로 전년 동기보다 3조1900억위안 줄었다.

반면 펀드와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 예금은 4조6500억위안 늘어 전년 동기보다 증가액이 2조1000억위안 많았다. 특히 지난 4월 가계예금은 한 달 만에 1조9400억위안 감소했고 5월에도 1100억위안 줄었다. 같은 기간 비은행 금융기관 예금은 두 달간 3조6100억위안 증가했다.

대형은행은 내리고 민영은행은 올리고

이같은 머니무브는 올 여름께 두드러졌다. 화위안증권에 따르면 올 8월 말 은행 자산관리상품 잔액은 약 35조8000억위안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7월 말보다 약 3500억위안 늘었다. 중신증권은 올해 말 관련 시장 규모가 35조~36조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증시로 향하는 자금도 늘고 있다. 올 1~8월 중국 본토 A주 신규 계좌는 2521만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증가했다. 이미 지난해 연간 신규 계좌의 91.9%에 달한다.
중국의 초저금리 장기화로 가계 예금이 자산관리상품과 펀드 등으로 이동하자 일부 민영은행이 장기예금 금리를 올리며 자금 이탈 방어에 나섰다. 게티이미지
중국의 초저금리 장기화로 가계 예금이 자산관리상품과 펀드 등으로 이동하자 일부 민영은행이 장기예금 금리를 올리며 자금 이탈 방어에 나섰다. 게티이미지
안정성을 중시하는 중국 가계의 특성상 현재까지는 주식보다 채권형 자산관리상품과 보험 등이 더 많은 자금을 흡수하고 있지만 분위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은행들로서는 딜레마다. 예금 이탈을 막으려 금리를 올리면 조달비용이 높아져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상업은행의 순이자마진은 올 2분기 1.41%에 그쳤다. 전 분기보다 0.01%포인트 상승하며 2022년 이후 처음으로 분기 기준 개선됐지만 여전히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국유 대형은행들이 거액예금증서 금리를 대부분 연 1%대로 낮추고 고금리 장기 상품을 줄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일재경은 "자금 조달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일부 중소·민영은행이 특정 만기에만 금리를 높여 장기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은행권에서 시작된 일부 금리 인상을 봤을 때 머니무브를 둘러싼 경쟁이 불거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중국의 초저금리 시대가 예금 금리 경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은행마다 필요한 시기와 만기에만 금리를 올리는 정밀한 자금 확보 경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는게 맞다"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