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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프로야구 유일 '3000안타 돌파' 재일교포 장훈 별세
향년 86세…동료 백인천 곁으로
오른손 화상 딛고 왼손 타자로 우뚝
선수때 숱한 회유에도 韓국적 유지
KBO리그 초석 다지는 데도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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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TBS 등 일본 매체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9일 오후 5시께 도쿄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현역 시절 ‘안타 제조기’로 불리며 일본 야구사를 새로 쓴 그는 은퇴 후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NPB 통산 최다 안타 1위(3085안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데뷔 첫해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거머쥔 고인은 닛타쿠, 니혼햄, 요미우리 자이언츠, 롯데 오리온스 등을 거치며 당대 최고의 강타자로 군림했다. 1981년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23시즌 동안 275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 319도루라는 독보적 기록을 남겼다. 1962년에는 타율 0.333, 31홈런, 9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37의 성적으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고인의 가장 큰 무기는 특유의 꾸준함이었다. 통산 7차례 타격왕에 올랐고, 외야수 부문 베스트나인에 16번 뽑혔다. 1980년 5월 28일 가와사키 구장에서 터뜨린 우월 홈런으로 일본 야구 사상 최초로 3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이 기록은 2위 노무라 가쓰야(2901개), 3위 오 사다하루(2786개)를 크게 넘어 여전히 난공불락으로 남아 있다. 1990년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야구전당에 헌액됐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잠시 지도자 생활을 거쳐 야구 평론가이자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TBS 장수 프로그램 ‘선데이 모닝’ 등에서 직설적인 논평을 선보이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현역 시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숱한 차별을 겪으면서도 한국 국적을 꿋꿋하게 지켜냈다. 18세 때 프로 입단 과정에서는 한국 국적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단이 일본 국적 취득을 조건으로 입단을 제안하자 어머니가 “조국을 팔면서까지 야구 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졌다. 다만 고인은 2024년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뒤늦게 일본 국적을 취득한 사실을 털어놨다.
한국 야구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를 맡아 KBO리그의 초석을 다지는 데 헌신했다. 고인의 굵직한 업적은 국내에서도 일찍이 인정받아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수여됐다.
재일교포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도 잊지 않았다. 일본 무대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으며, 지난달 세상을 떠난 고(故) 백인천 전 감독이 일본에 진출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백 전 감독은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라며 각별한 애도를 표한 고인은 한 달도 채 안돼 동료의 곁으로 떠났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