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hatGPT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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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파병 반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한 게시판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서 만난 대학생 A씨(27)의 대답은 정반대였다.

"저는 파병에 찬성합니다."

A씨는 "문제는 시점인데, 늦어지면 보내는 부담은 그대로인데 얻는 건 없어지지 않느냐"며 "어차피 가야 한다면 우리가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했다.

캠퍼스 벽에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크게 내걸렸지만, 정작 20대 전체 여론은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고 있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20대가 다른 연령대보다 호르무즈 파병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한미 관계와 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져 파병의 득실을 계산하는 청년층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 "우리만 빠지는 게 이상" vs "누가 책임지나"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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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가에는 '파병 반대' 대자보가 눈에 띈다. 진보대학생넷은 지난 7일부터 강원대 등 5개 거점국립대와 경희대·고려대·동국대 등 17개 대학에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에는 "왜 청년들이 강대국의 패권 다툼에 외교적 협상 카드로 내몰려야 하느냐"는 등 대체로 파병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조금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전반적인 여론조사에서 전 연령대 통틀어 20대가 호르무즈 파병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7~9일 전국 성인 1002명 휴대전화 면접·응답률 15.4%)에서 18~29세는 찬성 40%, 반대 22%였고, 9일 발표된 한길리서치 조사(5~7일 1018명 유·무선 조사·응답률 2.5%)에서는 찬성이 51.6%로 과반을 넘겼다.

지난 6일 공개된 개혁연구원 조사(1017명 무선 ARS·응답률 2.34%)에서도 18~29세는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이 '정당하다'는 응답이 45.0%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11일 공개된 한국갤럽 조사(8~10일 1000명 무선전화 면접·응답률 9.4%)에서는 찬성이 34%로 우세하지는 않았지만, 반대 50%로 낮은 편에 속했다.

대학가에서 눈에 띄는 목소리와 20대 전체 여론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데는 의견 표출 방식의 차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자보나 집회는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단체와 학생들이 주도하는 반면, 여론조사에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청년층까지 포함된다. 대학가에서 크게 보이는 목소리가 반드시 청년층 전체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20대 일부가 이번 파병을 단순한 '전쟁 참여'보다 한미동맹과 경제안보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날 대학가에서 만난 파병 찬성 청년들은 이념이나 명분보다 한국이 얻게 될 외교·경제적 득실을 먼저 따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생 B씨(26)는 "이번에 (호르무즈 파병을) 안 가면 다음에 미국이 정말 급할 때 우리나라의 부탁은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 이후 북한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누구한테 손을 벌리느냐"고 말했다.

대학원생 C씨(28)는 "반대하는 분들 얘기는 다 '왜 우리가'로 시작하는데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며 "그 배들을 지키는 게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만 빠지는 것은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에도 같은 이유로 찬성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동국대학교 한 게시판에 부착된 '호르무즈 파병 반대' 대자보 /사진=이정우 기자
동국대학교 한 게시판에 부착된 '호르무즈 파병 반대' 대자보 /사진=이정우 기자
다만 반대하는 청년층도 적지 않았다. 대학생 D씨(23)는 "미국이 보내라고 하니까 보내는 것 아니냐"며 "왜 우리 군인이 가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대학생 E씨(21)도 "일부에선 비전투 병력을 투입하자는 얘기도 있는데, 거기도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 아니냐"며 "갔다가 한 명이라도 다치면 그때는 누가 책임지냐"고 지적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석유를 안 쓰는 나라가 되면 파병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며 "파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해상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전쟁 장기화로 석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누리꾼은 이란이 한국의 파병 결정 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점을 들어 "미국과의 관계만 고려해 파병을 결정할 경우 이란과의 외교 관계 악화는 물론 우리 국민과 기업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전문가들 "파병 여부 결정 더 미뤄선 안 돼"

사진=REUTERS
사진=REUTERS
청년층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정부가 한 달 가까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한미동맹과 에너지 안보를 고려하면 파병 필요성이 있지만, 국제적 명분과 장병 안전, 이란과의 관계, 국내 정치적 부담까지 동시에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파병 논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한국의 대통령에게 이란의 비핵화 노력에 동참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으나 '사양하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적으며 불거졌다. 이후 미국 측에서 호르무즈 기여를 요청하는 움직임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청와대는 여전히 파병 여부에 대해 "최종 결정된 바 없다"고만 밝히고 있다.
호르무즈 파병 반대 시민사회 각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호르무즈 파병 반대 시민사회 각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정부가 파병 여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배경으로 국제적 명분 부족을 꼽았다. 최근 이번 파병을 2003년 이라크 파병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지만,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미국의 요구가 중심이어서 국제사회 차원의 명분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실제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의 이라크 점령 및 전후 재건에 대한 국제사회 지원을 촉구하고 다국적군 구성을 승인하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뒤 비전투 병과를 중심으로 파병을 결정했다.

국내 정치적 부담도 정부의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정부 개각 때 진보 진영을 더 챙겨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제대로 챙기지도 못한 데다 파병까지 하면 진보 진영은 완전히 등을 돌릴 것"이라며 "그렇다고 파병을 안 하면 중도층이 돌아선다.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정부가 결정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들어가야 할 판이면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깔고 앉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병 방식에 대해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자리를 깔아놓은 상황에서 우리가 합쳐 다자나 소다자로 가는 게 안전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기사에 언급된 여론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중대사안'은 사법(司)·안보(安) 이슈를 짚습니다. 검찰청 폐지·국군사관학교 통합 같은 굵직한 변화부터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이야기까지, 이정우 기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기록하겠습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