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中企, 세부 내용 몰라
미준수시 수출 거부 당할 수도
2028년 규제 강화…대응 나서야
유럽연합(EU)의 새로운 포장 규제가 시행된 지 한 달이 흘렀지만, 국내 수출 현장에선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상당수 중소·중견기업은 세부 규제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이 현지 규제를 준수하지 못한 사실이 확인되면 수출을 거부당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10만개 EU 수출 기업에 적용
6일 업계에 따르면 EU의 포장·포장폐기물 규정(PPWR)은 EU 지역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포장재가 환경 기준에 맞는지를 기업이 스스로 입증하도록 한 제도다. 18개월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달 12일부터 EU 27개 회원국에서 적용됐다. EU에 수출하는 기업은 포장재의 사용 재질과 유해 물질 기준 충족 여부 등을 기술문서(TD)에 담고 적합성선언서(DoC)를 작성해야 한다.
EU에 수출하는 모든 제품이 규제 대상이다. 식품과 화장품 등 업계가 규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으며 전자·자동차·의류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EU 수출액은 701억달러(약 95조원)에 달했다. 수출 기업은 10만 곳이 넘는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중소·중견기업이 PPWR의 세부 규정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KOTRA와 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일부 화장품업체는 병·펌프·캡·라벨·단상자 등 품목별 규제 대상을 뒤늦게 확인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관 인증서로 현지 인증서를 대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업도 있다”고 전했다.
유럽의 일부 고객은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의무를 한국 기업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PR 등록은 현지 기업 의무인 것으로 확인됐다. KOTRA 관계자는 “시행 초기 정보 부족으로 EU 현지 기업과 국내 기업 간 규정 해석이 다른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수출 중단 가능성 등을 우려해 EU의 포장 규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전사 대응체계를 가동했다”며 “마케팅·패키징 디자인·구매·연구소 등이 협력사별로 흩어진 포장재 재질 정보와 시험자료를 수집해 표준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농심, 삼양식품 등 주요 식품업체도 수프류와 스낵 등에 사용되는 다층 복합 소재를 재활용 소재로 바꾸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전자 대기업은 이미 상당수 포장재를 재활용 종이 소재 등으로 교체했다.
◇“상당수 中企, 세부 규정 몰라”
업계에선 상당수 중소·중견기업이 여전히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영세 부자재 업체 중에는 규제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곳도 많다”고 밝혔다.
실제 화장품은 통상 용기·캡·펌프·라벨·상자 등을 다양한 중소기업이 나눠 공급한다. 이에 따라 화장품업체가 EU 포장 규제를 준수하려면 협력사의 포장 재질과 시험 정보 등도 확보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외포장·팔레트·비닐 공급업체 등 협력사에 TD와 DoC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지만 제대로 자료를 제출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고 털어놨다. 중소기업들은 소재 전환에 따른 비용도 큰 부담이다.
패키징 플랫폼업체인 올패키징의 이한영 대표는 “평생 특정 용기 하나를 만들어온 업체가 갑자기 유럽 규정에 맞춰 재질 정보와 시험자료, 문서까지 갖추라고 하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EU에 수출한 제품이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게 확인되면 수출이 거부될 가능성도 있다”며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업계는 앞으로 규제 강화도 우려한다. 오는 2028년엔 EU 공통 라벨 등 표시 기준이 확대된다. 2030년부터는 재활용성 등급과 플라스틱 재생 원료 사용 기준 등이 본격화된다. 지금은 포장재가 기준에 맞는지를 ‘증명’하는 단계라면 앞으로는 포장 구조와 소재 자체를 규제에 맞춰 바꿔야 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지금이라도 정부와 기업이 공급망 전반의 대응체계를 서둘러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