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앞 상권 모습. 폐업한 가게들이 눈에 띈다. /영상=이정우 기자
이대 앞 상권 모습. 폐업한 가게들이 눈에 띈다. /영상=이정우 기자
"이미 망한 상권에 임대료도 높은데 누가 오겠어요. 그 돈이면 차라리 홍대나 연남동으로 가겠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는 25일 텅 빈 점포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이대 상권은 대학생과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의 대표 상권이었지만 지금은 예전과 같은 활기를 찾기 어려운 분위기다.

과거 중화권 관광객 사이에서는 이화(梨花)의 중국어 발음이 '돈이 불어난다'는 의미의 '리파(利發)'와 비슷하다는 속설이 퍼지며 이대가 관광 코스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관광객이 쇼핑할 의류·화장품 점포 등이 줄면서 그 발길마저 끊겼다.

◇ 1년 만에 폐업 더 많아졌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그래프=신현보 기자
이대 근처 상권. 곳곳에 공실이 눈에 띈다. /사진=이정우 기자
이대 근처 상권. 곳곳에 공실이 눈에 띈다. /사진=이정우 기자
29일 한경닷컴이 서울 열린데이터광장의 일반·휴게음식점 인허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현동에서는 올해 상반기 26곳이 폐업하고 17곳이 새로 인허가를 받았다. 폐업이 인허가보다 9건 많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폐업 18건, 인허가 31건으로 13건 순증했지만 1년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폐업은 전년보다 44.4% 늘었고 인허가는 45.2% 줄었다.

2021년 상반기에는 39곳이 순감했고 2022년에도 18곳이 감소했다. 2023~2025년에는 소폭 증가했지만 올해 다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 "규제 풀리자 카페만 늘었다"

이대 일대는 2013년 수립된 신촌지구 일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의류·잡화점과 미용실 등이 권장 업종으로 지정됐다. 권장 업종은 주차장 설치 기준을 완화 받았지만 음식점과 카페 등 다른 용도로 바꾸려면 주차 공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해 사실상 입점이 제한됐다.
이대 근처 한 오피스텔 1층에 붙어있는 안내판. 다만 해당 층은 여전히 공실 상태였다. /사진=이정우 기자
이대 근처 한 오피스텔 1층에 붙어있는 안내판. 다만 해당 층은 여전히 공실 상태였다. /사진=이정우 기자
서대문구는 2023년 음식점과 제과점, 공연장, 학원, 체육시설, 의원 등을 권장 용도에 추가해 업종 제한을 완화했다. 하지만 규제 완화 3년째인 현재까지 상인들이 체감하는 회복 효과는 크지 않다.

이대역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씨는 "업종 제한이 풀린 뒤에도 상권 분위기가 살아났다는 느낌은 없다"며 "과거에는 지역에 따라 카페가 들어오지 못했는데 규제가 풀리자 카페가 한꺼번에 늘어 경쟁만 심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생뿐 아니라 예전에 오던 관광객도 크게 줄었다"고 했다.

높은 임대료도 신규 점포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 음식점주 C씨는 "예전에나 이대 앞이 인기 상권이었지, 지금 이 근방에 올 사람이면 연남동으로 간다"며 "장사는 안 되는데 임대료는 비싸다. 그 돈을 내고 이곳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상가 다 지은 뒤 풀면 뭐 하나"

이대 앞 한 건물 모습.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실이 눈에 띈다. /사진=이정우 기자
이대 앞 한 건물 모습.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실이 눈에 띈다. /사진=이정우 기자
규제 완화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대역 인근 공인중개사 D씨는 "큰 음식점이 들어오려면 층고나 환기·배수시설 등 기본적인 구조를 갖춰야 한다"며 "업종을 제한한 상태에서 상가를 모두 지어 놓고 나중에 규제를 풀면 다시 허물고 지을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E씨는 "새로운 업종이 들어와 몇 년간 유지돼야 상권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최근에는 점포가 들어와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금방 나간다"며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임대료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최근 서대문구 상권분석보고서에서 이대 상권에 대해 "주말 유동인구 대비 방문객의 소비 전환율이 미흡하다"며 "공원·보행로 등 보행환경 규모가 작아 일상적 체류 유도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정우/신현보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