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폰. 사진=라이트·테크크런치
라이트폰. 사진=라이트·테크크런치
하루에도 수십번씩 무심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최근 '디톡스폰'을 알아봤다. 숏폼 영상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알림에 새벽에서야 잠이 드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다. 하지만 지도, 메신저, 간편결제 같은 필수 기능은 포기할 수 없었다. 김씨는 "스마트폰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필요한 기능만 남긴 휴대전화라면 써보고 싶다"며 "최신폰이 많지만 이젠 심플한 걸 사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 같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늘면서 기능을 덜어낸 휴대전화를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목표액이 10만달러였던 휴대전화에 160만달러에 육박하는 돈이 몰렸다. 미니멀컴퍼니가 내놓은 '미니멀 폰 2'는 크라우드펀딩 시작 보름여 만에 후원자 약 2400명을 끌어모았다. 기능을 늘리던 스마트폰 시장의 흐름을 거슬러 '덜 쓰기 위한 휴대전화'에 돈을 내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셈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 과몰입과 디지털 피로를 줄이려는 수요가 확산하면서 통화·메신저·지도 등 필요한 기능은 남기고 소셜미디어·무한 스크롤을 제한하는 '디톡스폰'·'미니멀폰'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미니멀폰 업체 심플 폰스는 지난 20일 '덤버 미니' 2차 생산분 예약이 1000대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제조사로부터 오는 11월 중순께 2000대를 추가 공급받을 예정이다.

덤버 미니는 스마트폰에 가까운 기능을 남기면서 화면 크기와 앱 사용 방식에 제약을 둔 제품으로 해외에서 화제가 됐다. 가격은 149파운드. 2.8인치 터치스크린과 물리 키패드를 함께 탑재했고 AOSP 14 기반 '덤버 OS'를 사용한다. 왓츠앱, 메신저, 스포티파이, 구글 지도, 우버, 은행·대중교통 앱 등을 쓸 수 있다. NFC 결제와 전·후면 카메라도 지원한다. 대신 작은 화면으로 영상 시청도, 소셜미디어 이용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앱 블로커'를 이용해 원하는 앱을 차단할 수도 있다.

초기 제품에선 품질 문제도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주요 기능을 무작정 없애는 대신 필수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두면서 호응을 끌어냈다. 당시 경험은 신생 미니멀폰 업체가 양산 품질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보여준 사례다.
무디타 콤팍트. 사진=무디타
무디타 콤팍트. 사진=무디타
지난달 21일 공개된 '라이트 플립'은 기능뿐 아니라 화면도 덜어냈다. 미국 라이트가 299달러에 예약판매 중인 플립폰으로 5G, 지도, 메모, 카메라 등은 지원하지만 터치스크린과 외부 화면을 뺀 것. 첫 출하는 내년 4월로 예정됐다. 이달 초 첫 출하 물량은 이미 예약이 완료됐다. 이후 예약분은 내년 4월 말~5월 물량으로 넘어갔다. 라이트 구매고객은 지난 10년간 누적 10만명을 넘었다.

디톡스폰·미니멀폰 수요는 2024년 들어 수치로 확인됐다. 스마트폰 스타트업 HMD는 전체 피처폰 시장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자사 제품 판매량이 2024년 기준으로 전년보다 두 자릿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2023년보다 수백만대 더 팔렸다는 것.

2024년 출시된 'HMD 바비 폰'은 미국·영국에서 출시 직후 품절되다시피 했고 여러 차례 재고가 동났다. 복고풍 디자인에 '디지털 디톡스'를 결합한 제품이 젊은 소비자에게 패션 아이템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설명이다.

폴란드 스타트업 무디타의 '무디타 콤팍트'도 2024년 킥스타터에서 목표액 15만유로를 3시간30분 만에 채웠다. 최종적으로 34개국 1078명이 참여해 35만3751유로를 모았다. E잉크 화면, 오프라인 지도, 통신 모뎀, 마이크를 끌 수 있는 '오프라인+' 기능이 호평을 받았다.
낫싱 '폰 (3a)'. 사진=낫싱
낫싱 '폰 (3a)'. 사진=낫싱
일반 스마트폰에서도 '덜 복잡한 경험'을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낫싱은 지난해 '폰(3a)'에 전용 버튼 '에센셜 키'와 AI가 화면 캡처·음성 메모를 정리하는 '에센셜 스페이스'를 넣었다. 옴디아에 따르면 낫싱의 지난해 스마트폰 출하량은 300만대를 넘어 전년보다 86% 증가했다. 낫싱 성장세를 디지털 디톡스 수요로 볼 수 없지만 단순화된 사용경험을 향한 수요로 읽을 수 있다.

업계에선 디톡스폰이 스마트폰을 대체하기보다는 '두 번째 폰'이나 특정 소비층을 겨냥한 틈새시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눈에 띄는 건 제품이 갈수록 덜 '멍청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핵심 기능을 버릴 수 없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 지도·결제·메신저 같은 필수 기능만 놓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면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부분만 제어하는 형태가 앞으로는 사용자 취향별로 세세하게 타깃으로 삼는 제품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