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청과물 매장에서 소비자가 장을 보고 있다./사진=박수림 기자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청과물 매장에서 소비자가 장을 보고 있다./사진=박수림 기자
“무화과 1㎏에 5000원! 마감 세일합니다.” 지난 24일 오후 6시께 서울 용산구의 한 청과물 가게. 점주가 호객하자 행인과 인근 정류장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하나둘 매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진열된 과일을 꼼꼼히 살피며 가격과 당도 등을 물었다. 이후 매대 앞에 놓인 무화과 봉지가 손님 손에 하나씩 들렸고, 얼마 남지 않았던 재고가 순식간에 동났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장보기에 밀려 자취를 감추는 듯했던 동네 청과점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주택가나 지하철역 등 생활 동선 가까이에서 필요한 만큼만 간편하게 장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부각되면서다.

집 앞·퇴근길에 ‘쏙’…늘어나는 동네 청과점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청과물 매장에 소비자들이 모여 있다./사진=박수림 기자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청과물 매장에 소비자들이 모여 있다./사진=박수림 기자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택가 도로변이나 버스 정류장 등 골목 상권 중심으로 동네 청과점이 다시 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국 과일·채소가게 사업자는 3만451개로 전년 동월(2만9324개) 대비 3.8%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세청이 분류하는 100대 생활업종 전체 사업자가 1.2%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빠른 증가세다.

이날 찾은 청과점 역시 문을 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규 매장이었다. 점포는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을 보기 위해 일부러 매장을 찾는 손님도 있었지만, 길을 지나거나 귀가하는 길에 잠시 들러 채소나 과일 몇 가지를 사가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이 가게 주인은 “정류장 앞이라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자리 잡았다”며 “실제 버스를 기다리던 중에 들어오거나 퇴근길에 버스에서 내려 바로 들르는 손님도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주부부터 1인 가구 손님까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다양하게 찾아온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역시 접근성과 편의성을 장점으로 꼽았다. 70대 주부 전모 씨는 “대형마트보다 가격이 싼 건 아니지만 집에서 가까워 급하게 필요한 과일이나 채소를 바로 살 수 있어 편리하다”며 “예전 길가에 과일이나 채소를 늘어놓고 팔던 가게와 달리 매장도 깔끔하고 청결하다”고 말했다.

마트보다 안 싸도 간다…‘필요한 만큼만’ 소량 장보기

사진=뉴스1
사진=뉴스1
대형마트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의 생활 동선 가까이에 자리 잡아 일상적 장보기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는 분석. 실제 인근 대형마트와 가격을 비교해 보면 품목에 따라 비싸기도 하고 싸기도 했다.

사과(홍로)는 대형마트에서 7~8개에 1만4990원이었지만 청과점에서는 10개에 1만원이었다. 대파 한 단도 각각 3590원과 2500원, 애호박 한 개는 1490원과 1000원으로 청과점이 저렴했다. 반면 샤인머스캣 한 송이는 대형마트가 5920원, 청과점이 7000원으로 청과점이 더 비쌌다. 천도복숭아 역시 대형마트에서는 1.2㎏에 7920원, 청과점에서는 7개에 1만원에 판매됐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같은 품목이라도 산지와 크기, 당도 등에 따라 그때 그때 가격 차이가 크다.

이처럼 가격이 꼭 저렴한 건 아닌데도 소비자들이 동네 청과점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마트보다 유연한 판매 방식에 있다. 청과점은 점주가 직접 상품을 매입해 팔기 때문에 가격과 판매 단위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당일 남은 물량이나 상품 상태에 따라 가격을 낮춰 판매하거나 구매량에 따라 현장에서 즉석 할인을 해주는 식이다.

포장 단위가 정해진 대형마트와 달리 낱개 또는 소량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고물가에 한 번에 지출하는 장보기 비용을 줄이려는 소비자뿐 아니라 식재료를 남기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려는 1~2인 가구의 수요와도 맞아떨어진다.

서울 용산구에서 친구와 함께 자취하는 20대 김모 씨는 “둘이 살다 보니 마트에서 사면 양이 너무 많아 다 못 먹고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청과점에서는 적은 단위로도 팔아 부담이 적고 가끔 사장님이 서비스나 덤을 얹어줄 때도 있어 소소한 재미가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이유로 근거리에서 장을 보는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2024 식품소비행태조사’에 따르면 식료품 주 구입 장소로 동네 슈퍼마켓·식자재마트를 꼽은 비중은 전체의 33.5%로 전년(31.7%)보다 1.8%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다는 비중은 35.2%에서 31.5%로 3.7%P 하락했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대형마트나 온라인은 상대적으로 묶음·대량 판매가 많은 반면 최근에는 필요한 상품을 소량씩 구매하는 소비 행태가 늘고 있다”며 “동네 청과점은 이런 수요에 대응하기 쉽고 판매량에 맞춰 당일 물량을 들여오기 때문에 재고 폐기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