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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이 문 연 BBC프롬스, 손열음·박수예가 뜨겁게 달궜다
[arte] Music Notes from London
올해 런던의 여름은 유난히 길고 무더웠다. 그래서일까, 신선한 바람과 그윽한 미학을 선사하는 BBC 프롬스(BBC Proms)의 존재가 더없이 반가웠다. 최근 3주간 로열 앨버트 홀에서는 올해 프롬스의 핵심 주제인 '아메리카(America)'와 '사후세계와 그 너머(Afterlife & Beyond)'를 조명하는 무대가 이어졌다. 그 뜨거운 열기 한가운데 한국인 솔리스트 두 명이 서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7월 21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가 깊은 서정을 담은 시벨리우스 협주곡으로 런던 관객을 매료시켰고, 8월 13일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거쉰의 '클래시컬 재즈' 피아노 협주곡으로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여기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사무엘 바버가 역사적 깊이를 더하고, 베시 졸라스와 윈튼 마살리스의 작품이 현대적인 감각을 불어넣었다.
최근 서울 교보문고 서가를 둘러보며 한국 독자들이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보내는 특별한 애정을 새삼 실감했다. 7월 21일 박수예의 무대에서 연주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듣다 보면, 텍스트나 성악의 도움 없이 오직 오케스트라만으로 거대한 문학적 사상을 그려내야 하는 작곡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곡은 장거리 비행에 비유할 만하다. 이륙 순간의 짜릿한 폭발 뒤로 길고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욘 스토르가르즈가 이끄는 BBC 필하모닉은 약 35분간의 강렬한 '기내 엔터테인먼트' 내내 첫 장면인 일출의 영화적 드라마를 훌륭하게 유지해 냈다. 학문과 과학을 묘사하는 생기 넘치는 푸가 대목, 그리고 바이올린 솔로가 도드라진 풍성한 춤곡 에피소드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순수한 음향만으로 문학적 사상을 가장 생생하게 입증한 순간은 단연 결말부였다. 섬뜩하게 대립하는 두 화성으로 인류와 우주의 끊이지 않는 불협화음을 그려낸 이 대목은 슈트라우스다운 창작이자 이날 연주를 영광스러운 모호함 속에 마무리 짓는 지점이었다.
이처럼 박수예와 손열음이 섰던 두 콘서트 모두 현존 작곡가의 작품으로 포문을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7월 21일 연주된 베시 졸라스의 '여름 바다 이야기'는 작곡가가 100세 생일을 맞이하고 나서야, 작성 후 무려 반세기 만에 영국 초연 무대에 올랐다. 제목과 달리 곡은 끊임없이 몰아치는 관현악의 파도로 거칠고 폭력적인 항해를 그려내며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바다 소네트(60번)'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오랜 기다림이 전혀 아깝지 않은 명연이었다.
올해 BBC 교향악단과 긴밀히 협연해온 손열음은 올가을 런던 위그모어 홀 리사이틀과 함께 10월 서울 및 고향 원주 무대를 앞두고 있으며, 박수예 역시 심플리 쿼르텟과 함께 유럽 전역에서 활발한 연주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