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의원 불신임, 獨 권한 분산
선진국에선 견제 장치 제도화
국내서도 '축소·폐지론' 꿈틀
오는 26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선을 긋길 거부하며 당내에서 거센 반발을 샀고, 6월 지방선거 패배 이후엔 끊이지 않는 사퇴 압박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1년이나.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은 대체로 일치한다. 강성 당원층에 호소한 점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대가다.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증시 악재로 지지율 하방 압력을 받는 지금,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그 반사이익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에 기대는 정치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법안을 서둘러 처리한 게 대표적이다. 양대 정당이 국민 대다수의 여론과 다른 방향으로 ‘폭주’하는 현상을 두고 한국식 당대표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강성당원에 포위된 장동혁 1년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3~7일 전국 18세 이상 25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전주보다 2.6%포인트 내린 43.3%로 집계됐다. 4주 연속 하락하며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부정 평가는 53%로 2.5%포인트 올랐다.
리얼미터가 6~7일 전국 18세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국민의힘이 전주 대비 0.1%포인트 떨어진 37.6%를 기록했다. 대통령과 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이례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 원인을 장 대표의 장외 정치에서 찾는 시각이 우세하다. 장 대표는 6·3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가 나올 때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규탄 집회가 열리는 올림픽공원으로 달려가 마이크를 잡았다. 당 관계자는 “불리할 때마다 강성 지지층 뒤로 숨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민의와 동떨어진 당대표가 역대 최장수 기록에 근접할 만큼 1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배경에는 한국식 당대표 선출·해임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당대표 시스템은 영국 독일 미국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선출은 어설프고 해임은 어려운’ 구조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책임당원이 되려면 월 1000원 이상을 6개월 이상만 내면 된다. 책임당원이 되기 위한 진입장벽은 낮지만, 이들은 당대표 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내 정당은 당원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를 일정 비율 혼합해 대표를 뽑는데, 국민의힘은 당원과 국민 투표 반영 비율이 각각 8 대 2, 민주당은 7 대 3이다.
이렇게 선출된 대표는 인사권과 공천권을 포함해 사실상 당의 전권을 쥔다. 하지만 임기 중 대표를 견제할 제도는 마땅치 않다. 양대 정당의 대표를 해임할 방법은 사실상 최고위원회 해체가 유일하다. 국민의힘은 선출직 최고위원 4명이 사퇴하면 지도부가 붕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자동 전환된다. 민주당은 최고위원 과반이 궐위되면 ‘비상사태’로 간주해 비대위로 전환한다. 하지만 당대표가 최고위원으로 자기 사람들을 심어 놓으면 이 같은 상황을 막을 수 있다. 국민의힘은 양향자·우재준 최고위원을 제외한 나머지 최고위원이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아 장 대표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국민의힘의 최근 역사를 보면 대표가 물러난 계기는 대부분 공식 절차가 아니라 여론에 의한 자진 사퇴였다. 2023년 3월 취임한 김기현 대표는 낮은 당 지지율, 수도권 위기론이 겹치자 취임 9개월 만인 그해 12월 사퇴했다. 뒤이어 비대위원장을 맡은 한동훈 위원장 역시 2024년 4월 총선 참패 이후 비대위원 전체와 함께 물러났다. 당 관계자는 “장 대표는 지지율 하락에도 사퇴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며 “임기를 끝까지 채우는 것은 물론 재선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고 했다.
미국은 당대표 없어
주요국의 정당 제도를 보면 당대표 선출이 까다롭고 해임 제도를 명문화한 경우가 많다. 당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
영국 보수당은 대표 후보군을 소속 의원들이 먼저 압축한 뒤 최종 후보를 일반 당원 전체 투표로 뽑는다. 의원들이 1차 스크리닝을 담당하는 셈이다. 해임 절차도 명문화돼 있다. 평의원 모임인 ‘1922위원회’ 소속 의원의 15%가 원내총무(원내대표)에게 서한을 제출하면 소속 의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비밀투표가 시행되고, 과반이 불신임하면 당대표는 즉각 물러나야 한다. 2003년 이언 덩컨스미스 대표가 이 절차에 따라 사임했고, 마거릿 대처는 1990년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자 대표와 총리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선출과 해임 모두 의원들의 판단 아래서 이뤄지는 구조다.
독일은 당대표보다 지역의 권한이 세다. 공천권이 대표에게 없고, 해임도 제도화돼 있다. 당원들이 지역 활동가를 먼저 뽑고, 이들 가운데 상위 조직으로 보낼 대의원을 다시 선출하는 다단계 구조다. 최종적으로 전당대회에 모인 대의원들이 비밀투표로 당대표를 정한다. 훈련되지 않은 일반 당원의 표심이 지도부 선출에 직접 반영되는 한국과는 결이 다르다. 또한 일정 수 이상의 하부조직(주당)이 요구하면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대표에 대한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 과거 나치당이 아돌프 히틀러 한 사람에게 권한을 몰아주다 보니 파시즘으로 흘러갔다는 반성에서 이를 분산시킨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같은 당대표 개념 자체가 없다. 공화·민주 양당 모두 전국위원회 의장이 있지만, 한국으로 치면 사무총장 역할에 가깝다. 미국은 상·하원 원내대표가 사실상 당을 이끈다.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뽑히고, 언제든 같은 방식으로 교체될 수 있어 선출 주체와 견제 주체가 일치한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해야”
한국 정치권에서도 당대표를 없애고 원내대표 중심으로 가자는 주장이 있다. 원내 다수 의원의 신임을 바탕으로 선출·교체되는 구조를 갖추면 강성 당원에게 좌우되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재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원내대표는 민의를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도 한몫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6월 국민의힘 의원 모임 토론회에 참석해 “원내대표면 충분히 당이 운영되는데 모든 사회 현상에 다 당대표가 관여하면서 정쟁이 일상화돼 있다”고 했다.
당대표의 공천권을 없애고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대표가 공천권을 쥔 한국은 선거 직전에야 후보가 결정되고 유권자들은 그 후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뽑혔는지 알기 어렵다”며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해 공천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